벌벌 떨며 움츠려있었던 과거의 나를 만난다
우리는 가슴속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다. 하나라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아서 헤아릴 수도 없다면 그대의 가슴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간 상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기 위해 많은 기억들을 지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나의 일상에 필요치 않은 기억들은 의식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마흔을 맞아 나를 위한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직장을 퇴사했고,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자서전' 쓰기였다. 자서전을 기록하다 보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을 써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시기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사건들을 하나씩 쓰기로 했다. 간신히 하나의 사건을 끄집어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잠근 방문이 열릴세라 문고리를 부여잡고, 손에 힘을 꼭 쥐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나중에는 손이 저려왔다. 문 밖으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드셔 취한 상태였고 어머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손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쳤다. 어머니는 설움에 북받쳐 "죽여라! 죽여!"라며 더욱 목청껏 소리 질렀고, 그 말에 아버지는 더욱 화가 치솟아 싱크대 서랍에 있던 식칼 하나를 쥐고 어머니에게 협박을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문 밖이 잠잠해졌다. 식칼을 들었던 아버지도 지레 풀이 꺾여 집을 나간 뒤였다. 어머니는 방안에 남아 "지긋지긋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혼잣말을 하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방문을 빼꼼히 열고 아버지가 없는지 먼저 확인했다. 아버지가 나간 것을 확인한 뒤, 그제야 울고 있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머니 혼자 그 무서운 공간에 놔두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아버지가 무서워 나 혼자 피하겠다고 방문을 꼭 꼭 걸어 잠그고, 방안에 숨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 사건은 '나는 나약하다'라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아버지에 대항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던 그 상황이 나를 나약한 멍충이처럼 느끼게 했다. 그래서일까! 20대를 사회정의를 위해 '전투사'처럼 마음에 철갑을 두르고, 강한 척 살았다. 나약한 나를 숨기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항하며 지냈다.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대안교육활동가, 환경활동가로 지내게 되었다.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꼭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자서전을 쓰며 나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되었고, 제일 밑바탕의 '나'를 가까스로 길어 올렸다. 오랜 기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그 시대의 부모들은 다들 이렇게 싸우며 지낸다고 합리화시켰다. 실제로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고만고만한 형편의 사람들이었다. 밤이 되면 종종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집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들 그렇게 지내'라는 말로 나만의 특별한 기억을 누구나가 겪는 평범한 기억으로 만들었다.
마흔을 지나 방에서 벌벌 떨며 움츠려있었던 10살의 나를 마주한다. 마흔이 지나니, 아버지의 자격지심과 어머니의 서글펐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듯하다. 과격한 행동으로 협박했던 일은 아버지의 잘못이 맞지만, 그 또한 내가 쉬이 판단할 수 없는 인생사라는 것을 마흔이 지나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10살의 나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때의 나는 그것이 나를 지키는 최선이었다. 무섭고 공포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괜찮다고'...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마흔의 내가 10살의 나에게 다독인다.
어머니를 지켜야 하는 것은 어머니의 일이었다. 지금의 어머니, 아버지는 서로의 약점을 잘 보듬어 늘 함께 다닌다. 어머니가 거동이 힘들 때는 아버지가 부축해서 병원에 다니고, 아버지가 돈을 벌지 못할 때는 담배 사라며 어머니가 용돈도 쥐어준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사건은 무수한 일상 중에 하나였다. 사실 아버지와 즐거웠던 경험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많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웠던 날보다 싸우지 않았던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한 번의 강렬했던 기억은 나를 쉽게 '나약한 인간'으로 규정했다. 그때 느꼈던 '나'란 존재를 오랜 시간 의식도 못한 채 유지시킨 것이다.
과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웠던 기억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기억에 대한 해석은 변한다.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갇힌 기억들은 나도 모르게 일상을 지배한다. 무의식적인 행동은 대부분이 이런 기억의 감정들로 인한 것들이 많다. 다만,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요히 나를 놔두고, 떠오르는 감정들을 마주한다. 그 감정들을 그대로 느껴주고, 마흔의 나는 관대하게 그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과거의 나는 그렇게 하나씩 지워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