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날지 못한다고 날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장 속의 새는 날지 않는다. 1평도 안 되는 작은 새장 속에서 날개를 펼칠 이유가 없다.
그렇게 길들여진 새장 속의 새는 결국, 날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날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대학에 입학 한 이후, 공부만 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자유를 만끽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소개팅을 하고, 연애를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각종 소모임 활동에 하루가 너무 짧았다.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성격까지 개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하고, 그때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해외여행도 해보겠다며 휴학까지 하고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소망했던 해외여행도 이루어졌다. 나의 날개는 활짝 펼쳐져 푸르른 하늘을 가로질렀다.
20대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었다. 부모님은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건강했다.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된다. 홀가분한 20대 생활이었다. 그리고 30대에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20대의 자유를 그리워하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매 순간이 전쟁 같은 하루 속에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고대하며 15평 집 안에서 엉덩이를 붙일 틈도 없이 화장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방으로 또 집 앞 분리수거장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분주히 움직였다.
15평의 집은 나의 새장이었다
새장 속의 생활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할 만했다. 가족이 되어 생활하니 안정감으로 마음이 편안했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늘 버거웠지만 그것도 나의 성장이라 여겼다. 나를 돌보았던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더 헤아리는 것을 보면 철도 드는 것 같았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 하루하루가 똑같은 어머니의 일상을 지켜보며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매일 아침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밥을 차리고, 김치와 소시지로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한다. 직장에 출근해서 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면 피곤한 표정이지만 저녁밥을 차리고, 과자와 물건으로 어질러진 방을 정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다. 그것이 유일한 안식처이다. 그리고 또 내일을 맞는다. 특별한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근검절약이 몸에 베여 여행은 해본 적 없고, 문화생활은 강 건너 남의 일이었다. 그 흔한 영화 한 편 극장에서 본 적 없다.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30여분의 길을 걷는 것을 건강관리라 철떡 같이 믿으며 자기 관리를 해오셨다. 운동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은 부모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다. 가끔 어머니가 특별하게 여기는 날은 계모임이다. 그날만큼은 곱게 단장하고, 안 입던 옷도 꺼내서 입어본다. 전날부터 장소와 약속시간을 확인하고 친구들과 수다의 꽃을 활짝 피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엄마가 되어도 나의 어머니처럼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는 하지 않아야지. 당당한 워킹맘이 되어서 다양한 사람 관계도 맺고, 그 안에서 또 친구도 만들어야지. 가족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주말이면 동호회도 참여해야지. 어머니와는 다른 생활을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육아와 살림은 남편과 반반으로 나눠서 하면 된다. 요즘은 남녀평등 시대니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어머니만의 새장 속에서 행복을 찾아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살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삶이 너무 답답해 보였다.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순간은 없어 보였다. 이런 부모님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호기롭게 장담했지만, 나의 새장은 어머니와 얼마나 다를까.
결혼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날개의 존재를 완벽하게 잊었다. 날개를 활짝 펴 날아다니던 과거 속의 나는 지워졌다. 새장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습득했고, 바깥세상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먹을 것이 있었고, 따뜻한 집이 있었고, 함께하는 가족이 있었다.
누군가가 새장 속의 문을 활짝 열어주어도 나는 과연 새장 속을 나가 밖으로 날 수 있을까! 나의 날개를 기억하고,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할 것이다. 멈칫할 것이다. 두려워할 것이다. 과거처럼 이렇게 살겠다고 철썩 주저앉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지금, 나는 잊었던 날개의 존재를 떠올리고 어설프지만 다시 날갯짓을 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