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엄마_02
내 한 몸 간신히 누울 만한 다락방에 엎어져서 일기장을 펴고 써내려갔다. 숫기가 없고 남 앞에 서면 얼굴부터 벌개지는 어린 소녀의 일기장에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해 맘속으로 끙끙 앓았던 불순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친구를 욕하기도 하고, 이유도 묻지 않은 채 혼을 냈던 선생님에게 당한 억울한 심정을 토해내기도 하고, 한 남자 아이를 짝사랑하며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의 고백까지도 적었던 것 같다.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일기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단짝 친구에게도 감정을 쉬이 내색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일기장은 내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친구였다. 절대로 보여져서는 안 되었기에 잠금장치가 달린 자그마한 열쇠가 귀여웠던 하드커버의 일기장을 사용했다. 일기장은 다락방 한 귀퉁이에 내내 자리를 차지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거의 모든 역사를 불살라서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간절했던 감정의 요동 탓인 것 같다. 일기장만 없앤다면 나의 흑역사가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 여겼다.
일기 이후에 딱히 글쓰기를 해본 적은 없다. 방구석 독서가 취미인 사람도 아니다. 책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몸을 움직여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한 시도 집 안에 있지 못하고, 혼자라도 집 밖을 나와 서성였다. 몸으로 부딪힌 것만이 내 것이다. 다소 거만한 나만의 철학이 어린 시절 나를 지배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시험을 위한 전공서적만 탐독하고 그 외에 대학생이라면 읽을법한 책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인문교양에 있어서는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이 토론하자고 하면 도망치기 바빴다.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토론 자리에 앉아봤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있을게 뻔했다. 겨우 한마디를 하면 백치미라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좌뇌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 멈칫할 때, 나는 일단 해버렸다. 나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은 늘 어두운 터널을 빛의 도움 없이 들어가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공포에는 딱히 형태도 정체도 없었다. 그 시간만 어떻게든 버티면 결국 터널을 나올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터널도 결국에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터널을 통과하면 이전의 나보다 한 뼘은 성장해 있는 것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을까? 사실 글쓰기가 뭔지 몰랐다. 한창 네이버 블로그가 유행하고 있었고, 육아를 하며 집안에만 있기 갑갑해서 일기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열쇠를 잠그며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을 쓰자니 쑥스럽고 낯설었다. 마구잡이로 감정을 배설해서는 안 되었다.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니 선택되는 단어도 조심스러워졌다. 나의 일상을 주저리주저리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의 경험을 술술 풀어놓으면 그만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시하고, 댓글을 달아주면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맘이었기에 그 소통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것 같고, 글 쓰는 재미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블로그의 글은 대부분 자랑할 꺼리들이다. 좋은 여행지를 다녀오고, 좋은 맛집을 다녀오고, 아이와 좋은 체험을 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더 많은 정보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정보성 글을 쓰게 되었다. 아마도 조회수를 염두 했던 것 같다. 정보성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이전 일기와는 다르게 몇 배나 필요했다. 육아를 하면서 지속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흥미로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지속되지 못한 채 블로그 글쓰기도 끝이 났다.
다시 일기로 돌아왔다. 공개되는 글쓰기가 아닌, 육아를 하면서 힘든 나름의 고충을 죄다 일기장에 쏟아 부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다. 얼른 공책 한권을 구입해서 적어 내려갔다. 육아일기가 유행이었다. 매일 꾸준하게 쓴 육아일기가 어딘가에서 소개되곤 했다. 육아일기를 쓰고, 책으로 발간까지 한 사례가 소개되면 괜시리 부러워졌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누구는 글을 쓰고, 누구는 글 한자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게으르고 무능하게 보여졌다. 집안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던 때다. 부지런히 육아일기를 따라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애꿎게도 손가락을 탓한다. 손으로 글씨 쓰니까 손가락과 손목이 아파서 못 쓰겠네. 푸념이 반복됐다. 흥미가 이어지지 못했다. 나와 글쓰기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미련 없이 이별했다. 딱히 글쓰기에 욕심은 없었다.
글을 쓰나, 안 쓰나 나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글쓰기에 열을 내야 할 만한 이유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글보다는 경험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 육아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값지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다.
글을 쓰지 않고도 멀쩡한 삶이라면, 나는 글을 쓰지 않겠다. 뭣하러 머리 아프게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귀찮은 것도 싫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 연필로 글쓰기는 손가락이 아파서 더더욱 싫다. 한 발짝 떨어져보면 다들 비슷비슷해 보여도 한 발짝만 들어가 보면 나름의 고통과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인생인지, 나에게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외상이라면 정확히 아픈 부위가 있고,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예상할 수 있지만 마음의 고통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뭔가 불편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혼자 남몰래 울어보기도 하고, 남편과 대화를 나눠보기도 하지만 쉽사리 정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답답함은 그대로 일상에서도 묻어나,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뭐든 심드렁한 태도로 무기력한 엄마가 되어갔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되자 글쓰기를 찾게 되었다. 손으로 글을 썼던 고통이 생각나, 오랜 연식의 노트북을 구했다. 작동은 좀 느리지만, 어차피 글만 쓸 거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일기를 썼던 마음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요동쳤던 마음을 직시하고 풀어냈던 일기장을 떠올렸다.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글로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을 글이니, 뭐든 써도 괜찮았다. 어린 시절 글 쓰는 나와 엄마의 글 쓰는 나는 달랐다. 이전에는 없었던 검열자가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글을 써놓고도 지웠다. 감정이 치받쳐 욕을 쓰려다가도 멈칫하며 결국 적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 안에는 ‘하면 안 돼!’ 절제와 체면의 견고한 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검열자가 수시로 검을 세워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유로운 글쓰기임에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