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엄마_03
큰 맘 먹고, 단단히 의지를 다잡아 시작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기대가 커서 그만큼 실망도 크다. 일기도 내 맘처럼 되지 않자, 아무것도 해보고 싶지 않았다. 해봤자, 얻는 것은 좌절감과 그로 인한 자존감의 추락이었다. 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일기 하나 쓰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온종일 어린 아이와 작은 집 안에서 씨름하다보니, 내 세계도 그만큼 작아져 있었다.
가끔 아이와 집을 나와 버스도 타고, 먼 공원으로 나들이를 간다. 간만에 들이쉬는 바깥공기만으로도 몸의 세포가 춤을 추는 듯하다. 힘들어도 아이와 자주 나들이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휴~ 집으로 돌아오니, 천근만근의 몸으로 축 늘어진다. 키가 낮은 어린 아이의 손을 잡느라고 허리는 옆으로 기울고 힘이 들어간 탓에 온몸이 경직된 탓이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분주하게 저녁 식사 준비하니, 얼른 눕고만 싶다. 자주 나들이를 나가겠다는 다짐은 역시나 다짐으로 끝이 났다. 좋은 줄은 알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운 동네 놀이터로 만족했다.
나의 일상에 나를 위한 짬은 한 시간도 없었다. 독박육아를 하는 맘들의 애로사항은 바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면 하고 바랬다. 남편은 되도록 일찍 퇴근을 해서 그 한 시간을 곧잘 마련해주곤 했다. 그럴 때면 얼른 세면도구를 챙겨 목욕탕에 가기 바빴다. 뜨거운 물속에서 몸을 이완하고, 살이 붉어지도록 때를 밀다 보면 육아의 고충도 조금은 때에 섞여 떨어져나갔다. 목욕을 끝낸 얼굴은 한결 맑고 부드러워졌다.
얼추 독박육아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가슴의 답답함도 익숙해지니 그럭저럭 살아냈다. 가끔 목욕탕도 가고, 도서관도 찾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어떻게든 적응해가는 인간의 능력이 가히 놀라웠다. 글쓰기는 남의 일로 두고, 나는 전업 맘으로서 충실했다.
뜻밖의 제안이 왔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지, 3년 차가 되었을 때다. 시골에서 육아하며 지내는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다. 분량은 A4 한 장 정도로 사례비도 준단다. 그러지, 뭐. 의외로 대답이 쉽게 나왔다. 이전에도 블로그에 글을 썼고 어렵지 않겠다 생각했다. 아이는 아직 보육기관에 다니지는 않지만, 항시 노심초사 지켜봐야 하는 영아는 아니었다. 혼자서도 제법 놀고, 낮잠도 곧잘 잤다.
연재 형식이었고, 한 달에 두 번의 글을 송고해야 했다. 마감기간도 그 정도면 넉넉하다 싶었다. 노트북을 펼치기 전에 어떤 글을 쓸지 고민했다. 대강 큰 그림은 잡혔다. 그러면 이번에 쓸 구체적인 꼭지를 구상해야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아이 잠을 재우고 나도 곧 잠에 들려고 할 때도 무엇을 쓸지 떠올렸다. 구상은 끝. 이제는 자판을 두들겨야 한다. 아이 낮잠을 재우면 한 시간은 확보할 수 있었다. 아이는 평소처럼 낮잠에 들지 못했다. 나의 눈은 아이가 아니라 시계를 향했다. ‘어서 빨리 자야지, 그래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데.’ 조바심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되었는지, 아이는 잠들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어제보다는 좀 나아졌다.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묵직한 노트북을 열어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니 백색의 공백이 나왔다. 간만의 글쓰기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긴장된 마음은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갈수록 차분해졌다. 얼추 한 장을 꽉 채웠다. 완성된 글은 아니었다. 아직 마감이 일주일은 남았으니 조금씩 수정하면 되었다.
아이가 낮잠 자는 한 시간, 첫 초고를 간신히 써내고 일주일을 꼬박 글 한편을 수정하는 데 썼다. 이 정도면 괜찮네. 스스로 만족되었다. 이대로 발송. 편집자의 글 피드백이 왔다. 우선 수정할 문장을 체크해줬다. 빨간펜으로 줄지어진 나의 글을 보노라니, 마치 내 몸을 칼질당하는 것처럼 쓰라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글쓰기에 있어서 초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문장의 구조나 전체적인 글의 구성, 거기다 독자에게 이해되도록 써야하는 글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가까스로 문장을 수정해서 글을 보냈고, 드디어 나의 완성된 글이 신문 지면에 실렸다. 집으로 도착한 그 신문을 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글을 읽었다. 노트북으로 작성한 글을 읽는 것과 사뭇 달랐다. 종이에 인쇄된 글은 다른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글 한편을 쓰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가슴을 꽉 채우는 뿌듯함. 이래서 글을 쓰는 구나. 원고비를 받은 첫 글쓰기였다.
연재는 계속 이어져 두 편, 세 편 비슷한 패턴으로 글을 썼다. 전업 맘이지만, 내 이름으로 실리는 글을 쓴다는 것이 자부심이 되었다. 글이 축적될수록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갔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었다고 알아봐 줄때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하루 종일 입이 귀에 걸려 다녔다. 10회 연재를 마치고 글이 이어질수록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목을 조여 오는 부담이 되었다. 소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전의 연재 글과는 다르고, 나만의 특색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생각이 꽉 차, 입맛도 달아날 지경이었다. 초고를 쓸 때면 속이 메스꺼워졌다. 심적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왜 이 연재를 쓴다고 해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걸까. 당장이라도 연재를 그만두면 이 고통에서 해방되겠지. 속도 편해질 테고, 매일 이야기꺼리를 찾느라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되는데. 그만두고 싶다. 어차피 원고비는 얼마 되지도 않고. 시간당 알바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완전 중노동이지. 돈을 벌려면 차라리 알바하는 게 낫지. 뭣 하러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맘속에서는 후회의 말들이 솟아났다. 뿌듯해하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어서 빨리 글쓰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 풀어낼 이야기가 없는 상태에서의 글쓰기는 고통이었다. 겨우겨우 하나의 이야기를 구상해서 쓴다 해도, 벌써 다음 이야기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만 확실히 증명되었다.
왜 처음부터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기대했을까. 돌이켜보면 글쓰기의 생리에 대해서 무지했다. 처음에 수영을 배우고, 수영선수처럼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꼴과 다르지 않다. 거기다가 나는 글쓰기를 딱히 배운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한글을 배워서 글쓰기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기나 블로그 글처럼 술술 써내려가니 그렇게 착각하게 되었다. 글을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로 내 생각을, 내 마음을 표현해낸다는 것이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고,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글쓰기를 제대로 해 본 경험이 없다. 일부러 배워서 써 본 경험도 없다.
‘재능 없음’이라고 낙인 찍은 기간은 꽤나 길었다. 평생 글쓰기와 담을 쌓고 지낼 수도 있었건만, 나의 글이 신문에 실렸던 그 뿌듯함이 결국에는 또 다시 노트북을 펼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