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글쓰는 엄마_04

by 홍시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는 글을 써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신문 지면에 연재 글이 쌓일수록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 탄생이라는, 기적을 보고 싶은 음흉한 속내를 보게 되었다. 단순히 나의 일상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잠재된 진짜 나의 능력을 글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아서 자유자재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된다면 좋겠다고 꿈꿨다.


헛된 망상은 직접 부딪혀보고서야 산산히 깨졌다. 학창시절에도 딱히 글쓰기에 소질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무슨 배짱인지, 달콤한 꿈을 꿨다가 깨어났다. 한편으로 미련이 남지 않으니, 그동안 신문에 실릴 글을 쓰느라 겪었던 고통은 나를 알아가는 대가였다.


취미로라도 남겨둘 수 있는 글쓰기를 외면했다. 일기도 블로그도 어떤 끄적임도 없이 직장맘으로 3년을 지냈다. 하고 싶은 일이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급하게 취직을 했다. 아이는 커서 보육기관에 다니고, 잔손이 덜 필요했다. 나는 일이 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연 차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일이 하기 싫어졌다. 매일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수시로 시계를 쳐다봤다. 그야말로 칼퇴근이다. 아무도 퇴근하지 않는 직장에서 제일 먼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의 눈치보다 사무실 안에서의 답답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가슴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고서야 ‘살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수시로 느꼈다. 하지만, 나와 맞는 일이 딱히 있는 것인가. 확신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하다보면 하기 싫어지고. 지금의 직장도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기에 지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바깥 음식과 단 과자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의자에 앉으면 접혀지는 뱃살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었다. 말랑하고 찰진 그 뱃살이 늘어지고 있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마흔을 맞은 생일날, 불현 듯 나를 위한 선물을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리고는 팀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를 위한 시간, 그것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선물이었다. 뭘 해야 할지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몇 달만 쉬면서 생각해볼 작정이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썼다. 지금의 인생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글로 펼쳐서 나의 서사를 읽고 싶었다. 자서전 같은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기억나는 모든 것을 썼다.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잊었다.


글을 쓸 때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시계를 보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전화가 와도, 카톡이 와도 확인하지 않았다. 몰입이 되어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순간에 나는 엄마도, 아내도, 어떤 역할도 아니었다. 먹는 것도 잊었다. 배고픔이 느껴져도 딱히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해본 적이 있던가. 없었다. 한 번도 몰입할 정도로 빠져들었던 적이 없었다. 늘 곁눈질을 하고, 늘 때를 기다리고, 늘 끝날 때를 염두에 두었다. 그제야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거 별거 아니구나. 몰입할 수 있는 일. 그게 하고 싶은 일이겠구나.


그렇게 글쓰기를 이어갔다. 나에 대해서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글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역사를 써내려가면서 많은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 중에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젊은 여대생이 혼자 인도여행을 떠나 공포에 떨었던 그 시간이, 글을 쓰고 나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배낭여행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 줄곧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로망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변변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부모님과 함께 냇가에서 튜브를 끼고 물놀이 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다. 대학에 다니면서 방학을 맞아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에피소드로 교정은 떠들썩했다. 일본, 중국, 태국, 라오스, 인도 나라도 각양각색이었다. 여행이 아닌 한 학기 이상의 해외연수를 다녀온 친구들도 있었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나는 부러웠다. 매 학기 등록금을 내는 것도 버거워 돈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학 2학년 학기 말,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해진 친구가 누나와 함께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인도라는 나라가 어디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그 친구가 다녀왔다면 나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 혼자 인도여행이라 하면 다들 말렸다.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사기당하기 쉽고, 심지어 전염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그럼에도 인도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끌렸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비행기 티켓 값과 한 달간의 생활비만 마련해서 떠났다. 인도의 델리공항에 도착했다. 해질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낯선 인도의 향기에 머리가 어질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뿌연 매연 연기에 눈앞은 흐렸고, 내가 인도에 왔음을 실감했다. 여행준비 카페와 안내책자로 인도에 대해 공부했지만, 공항에서 나와 인도에 발을 디디자 공부했던 내용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오늘 밤을 지낼 숙소를 찾아야했다. 공항에 줄서있는 택시를 타고 근처 호텔을 찾아 가까스로 몸을 뉘였다.


다음 날 해가 뜨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상인들은 장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걷히니 어제의 두려움과는 달리 용기가 생긴다. 배낭 가방을 챙겨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향해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 인도 현지인이 나를 불러 세운다. 서로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지만 그의 호의가 느껴졌고, 그가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고 싶다 했다. 인도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다니, 특별한 행운처럼 느껴졌다. 밀가루로 빚은 반죽을 화덕에 구워 고소하고 담백한 난과 요거트를 곁들인 커리를 먹었다. 그의 부인은 행운을 상징하는 빨간 점 스티커를 내 이마 중앙에 붙여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이었다. 낯선 여행객을 위한 그들의 친절이 고마웠다.

저녁이 되면서 그는 근처 숙소를 추천해주었고, 흔쾌히 그곳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하니 초저녁이었지만 눈이 감겼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오늘 집에 초대한 그였다. 난감했다. 여자 혼자 지내는 숙소에 어떤 이유로 들어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는 영어로 말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친절했던 그가 나를 덮치려하는 괴한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떨었다. 문밖의 그는 30분 이상을 큰 소리를 질렀고, 나는 배낭에 들어있는 책 한권을 소리 내어 읽으며 쿵쾅거리는 심장과 함께 밤을 지샜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가 뜨자마자 도망치듯 숙소를 나왔다.

20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둔 인도여행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기억은 묻어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꿈속에 나타나 가위에 눌려 홀로 깨어나지 못했고, 이유 없는 호의를 보이는 남성을 의심했다. 나이를 먹으며 마음 그릇이 커진 것일까. 부푼 꿈을 갖고 인도에 첫 발을 디디던 그 때로 돌아가 촘촘히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글이 나를 도왔다. 글로 써보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관찰해야 했다. 그를 표현할 때는 여전히 생생한 공포로 몸이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글로 써내려갔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나는 영어가 서툴렀고, 로컬 여행에 무지했다. 돌이켜보니 인도의 현지인은 적정한 비용을 바라고, 집으로 초대해 가정식과 인도문화를 체험하게 해주었다. 좋은 숙소도 추천했다. 지금은 대중적인 로컬 여행의 방식이었다. 공정 여행이라 불리며 관광지 체험이 아닌, 현지인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하는 관계 중심의 여행이다. 그는 나에게 로컬 여행을 제공했다. 그리고 비용을 받지 못했으니, 나를 찾아와 정당한 비용을 요구한 것이다. 그의 집을 떠올려보니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루를 나의 여행을 위한 가이드가 되었건만, 어떤 보상도 하지 않은 채로 나는 도망갔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포가 글을 쓰며 해프닝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요즘말로 ‘먹튀’였던 것이다. 그과거의 경험은 그대로지만 다르게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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