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으로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만 알고 있으면, 그 마을이 알고 있는 것이고, 그 마을이 알고 있다면 그 지역이 알고 있는 것이다. 랜선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망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랜선보다 재빠르다.
종종 지역 신문에 시민기자로 원고 청탁을 받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기사를 작성해서 보내기도 했다. 글을 쓸 수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덥석 잡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가장 잘 쓸 수 있는지 몰랐다.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기회가 찾아온다면 배운다는 마음으로 썼다. 처음은 늘 힘겨웠다. 매체에 실리는 글마다 저마다의 꼴이 있고, 틀이 있는데 나는 그 형식은 전혀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며 글을 쓰는 과정 동안 몸살을 앓았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기사’라는 글 형식을 마주할 때 나는 한 번도 올라본 적 없는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보이는 산과 등반하는 산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뭣도 모른 채 평소 신던 운동화를 신고, 산 입구에 당도했다. 산을 오른다. 흙길을 지나 켜켜이 쌓인 커다란 돌을 오르자, 미끄러웠다.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성큼 오르기에는 버거웠다.
논리적인 맥락을 갖고 써야 하는 기사는 나에게 평소 신던 운동화로 등산을 하는 것이었다. 생소했다. 그래도 일단 써본다. 써보지 않고서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배워서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운동화를 신고 꾸역꾸역 산을 올랐다. 억지로 오른 그 한 번의 등산으로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처음, 이라는 단어가 나를 관대하게 만들었다. 처음은 부족한 게 당연하다. 이제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고칠까만 남았다. 본격적으로 고칠 방법을 찾는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5원칙이 적용되게 글을 수정한다.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한 문장으로 작성해서 기사의 제일 머리에 위치해야 한다. 독자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스토리가 있는 글이 아니어서 자칫 독자는 흥미를 잃고 딴 데로 한 눈 팔기 때문이다.
대략의 기술은 어느 정도 습득했다. 기사로 작성하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보인다.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또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다. 다행히 정식 기자가 아닌 시민기자이다. 시민기자에게 정식 기자의 수준을 요구하진 않는다. 시민기자는 좀 더 시민의 입장에서 경험한 시선으로 글을 작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사는 경험과 체험, 참여에 바탕으로 한 생생한 글인 경우가 많았다.
마을에서 지내고 있으니, 마을 행사를 기사로 작성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애꿎게도 나는 마을에서 살면서도 공동체 행사에는 별 다른 참여를 하지 않았다. 이주했을 초기에는 어설프게나마 얼굴을 비췄지만, 나는 개인주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최소한의 예의만 지킨 채, 시골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욕심이란 게 생기니 사람이 변하기도 한다. 기사를 써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니, 무관심했던 공동체 행사를 찾아서 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한번 써보겠다는 일념이 사람을 바꿔버린다. 개인주의 성향이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극적으로 임했던 마을 행사에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쑥스럽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 속에 끼어 이것저것 캐묻는 게 여간 머쓱하다. 다시 집으로 갈까, 발걸음에 초조함이 묻어 있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쉬이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메모지를 들었지만 쉬이 사람들에게 질문할 수 없었다. 몇 번의 마을 행사는 열심히 뒷일을 도우며 신뢰를 얻는데 집중했다. 음식 만드는 일을 거들고, 서빙하고, 설거지를 했다. 시골의 마을 행사에 식사는 절대 빠질 수 없었다. 그 식사를 준비하는 데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다는 것을 주부로 살아봐서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얼굴도 잘 비치지 않던 내가 그 뒷일을 손수 한다고 나서자, 다들 환영한다. 한 손이라도 더 거들면 안 그래도 힘든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 환영의 인사가 내심 반가웠다. 냉대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을 행사에 소극적으로 참여했던 내가 미움을 받고 있지 않은지 염려가 됐다. 그 정도는 감수하리라 마음먹었던 참이었다. 혼자만의 자격지심이었던지, 다들 ‘어서 와’ 반갑게 맞이했다.
설거지라면 집에서도 지긋지긋한데, 마을 행사에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하는 꼴을 보자니, 웃기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억울한 마음이 올라올 때면 힘들게 취재하는 기자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나의 이득을 헤아렸다. 글을 쓸 때 취재가 필요할지도 몰라. 도움이 될 거야. 글쓰기를 배우는데, 이런 고생도 하는구나. 아! 만만치 않은 글쓰기.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하게 만드는구나.
남몰래 울고, 웃었다.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마력으로 나의 새로운 일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나’라는 틀을 조금씩 벗게 해 주었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잘’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새로운 나를 발견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희열감을 느꼈다.
참여가 필요하면 기꺼이 참여하고, 기사에 필요하다면 질문도 한다. 뻘쭘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게 된다. 어색함을 묵묵히 견디며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간단한 기사 쓰기의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 이제 가벼운 등산화를 신고 등산을 할 채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쓰기의 영역이 점차 넓어져갔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나. 완성된 글을 읽으면서 놀라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를 규정 지었던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 조금 유연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떤 가능성이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속에 설렘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