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by 홍시

어설픈 재능도 쓰여질 곳은 있다. 아직 무르익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채로 필요로 한 곳도 있다. 빼어나게 잘 쓰는 작가만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 외로 글을 쓰는 작가가 필요한 곳은 많다. 평소에 글 쓰는 근육을 계속 사용해왔던 것이 기회로 다가왔다.


기관이나 단체에서 매년 발행되던 결과보고서들이 변화의 때를 맞이 한 듯하다. 딱딱하게 틀지어서 작성한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고쳐주길 바랬다. 일명 ‘리라이팅’이다. 결과보고서의 형식도 각양각색이었지만, 요구하는 것은 ‘잘 읽힐 수 있는 글’로 탈바꿈시켜 달라는 것이다. 작가라는 호칭이 자연스레 불리기 시작했다. 일을 맡았으니 관계자들이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나는 작가였다. 아직 작가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이 멋쩍어서 얼버무리곤 했었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정도가 적당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작가라고 통용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쉽지 않지만 글을 쓰는 일, 글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넓게 봐서는 ‘작가’가 맞긴 한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됐고, 필요하니 명함도 제작했다. 누군가에게 ‘작가’라는 명함을 내미는 게 어색했지만 이 또한 반복되니 익숙해진다. 안녕하세요, 000 작가입니다. 천연덕스럽게 나를 소개한다.


처음 맡은 리라이팅 작업은 석탄화력발전소 관련 보고서였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 않는 분야이다. 300페이지가 되는 문서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수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과연 끝에 도달하긴 하는 것일까. 다행히 마감일자가 있었고, 기한을 어길 수 없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문서를 읽고, 관련 자료를 찾아서 읽었다. 이해되지 않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이해하려고 애썼다. 다시 수험생이 되어 공부하는 것처럼 바짝 긴장을 했다.


보고서를 반복해서 읽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낱말들을 골라내기 위해, 문맥의 결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글이 수정될수록 문장도 깔끔해지고 내용 이해도 수월해졌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유영하는 글을 보노라면 뿌듯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름 보람도 느꼈다. 마지막 오탈자까지 잡아내는 세심함을 끝으로 보고서 리라이팅은 끝났다. 가까스로 작업을 완성하고 나서 내가 했던 글 작업이 ‘윤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문이란 글이 더욱 윤이 나게 매끄럽게 문장을 다듬는 작업을 말한다. 오자, 탈자,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비문 등에 대한 수정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남이 쓴 글을 수정하는 것은 내가 쓴 글을 수정하는 것보다 유리했다. 내가 쓴 글은, 나에게 너무 익숙해져 좀처럼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남이 쓴 글은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글을 읽다가 툭툭 걸리는 부분만 걸러도 한 움큼이 되었다. 글을 읽으며 의식의 흐름에서 걸리는 부분은 여지없이 어색하거나 틀린 문장이 많았다. 그리고 세세하게 수정할 때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었다. 문장 관련 책을 참고했다. 적당한 규격의 채망을 만들어 거기에 글을 올리고 살살살 흔들면 불순물들이 채망에 남았다. 그 불순물을 적당히 덜어내고 적당히 수정했다. 그렇게 윤문 작가로 글을 매만졌다.


윤문 작가로서의 글 작업은 창작의 고통보다는 덜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어서 마음의 부담이 적었다. 남이 쓴 글을 매만져 재탄생시키는 재미도 있었다. 보고서를 쓴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서 보고서 형식의 글밖에 못 쓴다고 한탄했다. 잘 읽히는 글이 어떤 글인지 그 감각이 둔화되어 객관적으로 자신의 글을 대하지 못했다. 이럴 때 윤문 작가가 필요했다.


처음의 두려움을 곧잘 마주했던지라, ‘처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 두려움은 일단 한 발짝만 내딛으면 금세 사그라들었다. 부딪히다 보면 해결 방법은 있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면 결과물이 나왔다. 나의 글을 나도 완벽하게 고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남의 글이라면, 독자가 읽기에 부담 없도록 고칠 수 있었다.


한 가지의 전문 영역이 있지 않아, 여러 작업물을 흔쾌히 맡게 되었다. 아직 배운다는 입장이었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 있는 관대한 귀가 있었다. 과연 이 작업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의심은 여전했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 끝을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업물을 맡긴 사람도, 작업물을 맡은 사람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의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리라이팅’이나 글을 고치는 윤문 작업은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글 쓰는 실력이 우수하다고 마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 관건이었다.


마음의 부담이 비교적 적은 윤문 작업을 거치며 말이라는 것이 소통에 있어 얼마나 불완전한 도구인지 여실하게 실감했다. 개인마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단어 안에 담긴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그리고 있었다. 수정된 글을 보면서 서로의 소통 간격을 조금씩 좁혀 나갈 수 있었다.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윤문은 함께 쓰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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