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써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는 늘 두렵다. 여행지의 낯선 길을 걸어갈 때, 두려움과 설렘은 한 세트로 다가온다. 낯선 길도 걷다보면 이내 익숙한 길이 된다. 그러니 낯선 글이라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낯선 글을 쓰지 않으면 다른 글을 쓸 수 없겠지.
에세이는 주로 나의 목소리가 짙었다.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깨달음 등등 ‘나’가 수도 없이 글에서 나섰다. 이번 글은 ‘나’가 출연하지 않는다. 내가 쓰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는 능력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 더 우세한 것만은 확실하다. 횟수로 보나 빈도로 보나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난 늘 입보다 귀가 바빴다. 종종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다보면 진이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맥없이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빈 공백을 상상해야 하고, 유추해야 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질문까지 할 수 있어야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인터뷰를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한 연로한 어르신을 인터뷰해야 했다. 대략의 인터뷰 사전 질문지도 만들고 사전 조사도 했지만 생소한 주소지를 네비에 찍고 운전대를 잡을 때, 가슴은 두근거렸다. 예측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러 가는 길은 초조하고, 두렵다.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두려움이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끝냈을 때의 홀가분함을 상상했다. 어려운 과제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전대를 잡는 나를 떠올렸다. 두근거리던 가슴은 서서히 고요해졌다.
초행길을 나서니 예상 소요시간보다 더 일찍 준비해 길을 나섰다. 어떤 일을 하든, 플러스 알파 여유의 시간까지 챙긴다. 자잘한 실수를 곧잘 저지르는 헐렁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자칫 운전을 하다가 딴생각에 가야할 길을 놓치고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나에게 관대해지기 위해서 ‘여유’를 챙기는 편이다. 그 여유의 시간 덕분에 ‘실수해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약속한 사람에게 미안해할 정도가 되지 않도록. 되도록 시간 약속은 꼭 지키려고 한다. 자칫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은 ‘무시’ 당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그 빈도를 최소로 하려고 한다.
초행길이라도 복잡한 대도시만 아니면 네비게이션이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잘 안내한다. 그 목소리의 안내에 귀만 기울이면 비교적 약속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유의 시간도 챙겼으니, 도착해서도 20분 가량의 시간이 남는다. 다시 한번 사전 질문지를 훑어본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약속 장소로 찾아가니, 눈빛이 강렬한 인터뷰어가 맞이한다.
내가 예상했던 사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얼굴 사진도 머릿속에 넣어서 갔건만, 내 상상속의 이미지와 실제의 이미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인터뷰어가 자리한 환경도 한 몫 했다. 사무실을 리모델링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직접 연장을 들고 공사에 손을 보태는지, 작업복 차림에 얼굴에는 땀도 얼핏 보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가 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많다는 것을 설명했다.
짤막하게 나의 소개부터 시작한다. 인터뷰어는 요청하지 않아도 자신의 소개 차례인 줄 알고 적당하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이제부터 진짜 질문이다. 그런데 묘연하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려고 했지. 방금 전까지 살폈던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긴장했다. 가방 속의 질문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인터뷰어는 한 눈에 나를 간파했는지, 인자한 미소를 띄며 간단한 근황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대신해 물꼬를 터준 것이다. 마음이 풀려갔다. 긴장으로 굳었던 머릿속도 조금씩 유연해졌다. 질문지를 보며 구체적인 질문을 해나갔다. 인터뷰어는 단답이 아닌 이야기 구조로 서술 형식으로 제법 길게 이야기 해주었다. 마치 뒤에 이어질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준비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그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인터뷰의 끝이었다. 마지막 인사와 정리로 마무리하고 차 안으로 들어가니 이제야 휴~ 큰 숨이 쉬어진다. 또 하나의 터널을 통과했다는 안도감이 당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운전은 그야말로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좋아하는 음악의 볼륨을 높게 하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했다.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몸도 들썩이면서 혼자만의 축제를 즐겼다. 자동차 악셀을 밟을 때마다 가슴속의 흥분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자동차 안의 작은 밀폐된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놀았다. 중요한 수능시험을 끝마친 뒤 맞는 해방감 같은 것일까. 어려운 숙제였던 인터뷰까지 통과해내니, 물밀 듯이 해방감이 밀려왔다. 이 시간을 부여잡고만 싶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흘러간다. 축제도 끝날 것이다. 이대로 밤이 샐 것 같은 흥분도,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다. 인터뷰 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