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를 하며 레깅스를 입게 되었다
낯설기만 했던 헬스장이라는 공간이 점차 편안해진다. 365일 그 자리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흔들림 없이 움직이지 않는 운동기구들과 정해진 시간이면 알람처럼 얼굴을 내비치는 헬스인들. 근력이 약한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덩치가 헐크처럼 커다란 근육 빵빵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야리야리 몸이 가느다란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삼삼오오 떼를 지어 헬스 동작 한 번에 거울을 쳐다보며 시시덕 거리는 고등학생들은 고등학생대로 저마다의 운동을 하고 있다.
헬스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열심히 한 날도 있고, 대충 한 날도 있고, 운동을 하지 않고 빠진 날도 있었지만 몸은 헬스라는 운동에 익숙해져 갔다. 얼굴 표정만 보고도 ‘나 오늘 헬스 첫날이에요’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20대로 보이는 앳되고 통통한 여자가 헬스장으로 들어온다. 헬스장에서 빌려 입는 헬스복은 아니다. 상의는 박스티셔츠를 입고,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다. 그녀의 운동복은 몸의 형태를 전혀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녀는 러닝머신이 아닌, 프리웨이트 공간으로 향했다. 눈빛은 당당하지만 동작은 어설프다. 덤벨을 들고 등 운동을 한다. 미리 학습한 모습이 역력하다. 정보를 잘 활용하는 MZ 세대답다.
나는 그녀 옆에서 조금은 능숙하게 바벨을 양손으로 들고 등 운동을 한다.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코어에 힘을 주어 상체를 고정하고 등으로 자극이 들어갈 수 있는 각도를 미세하게 찾아 움직인다. 나와 그녀의 극명하게 다른 점은 운동 자세보다도 ‘복장’이다. 몸에 붙지 않는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옆에 몸에 착 달라붙는 나시와 레깅스가 있다. 몸의 형태를 그대로 노출한 운동복을 입은 나는 전면 거울을 매섭게 노려본다.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의 그녀는 나의 20대이기도 하다. 요가를 배운 적 있다. 허리를 굽혀 손끝을 쭉 뻗으면 무릎에 간신히 닿는 정도로 뻣뻣했다. 요가를 하면 좀 더 유연한 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동네에 위치한 문화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요가를 할 수 있었다. 몸의 움직임을 세심히 봐야 하는 운동이기에 몸에 붙는 요가복을 입는 것을 선호했다. 20여 명이 안 되는 수강생들 중 요가 좀 했다는 사람은 모두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운동복을 입었다. 나는 그 속에서 본의 아니게 튀는 사람이 되었다. 박스 티셔츠에 헐렁한 긴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다.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나에겐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었다. 운동복을 따로 구입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둘째로 몸에 착 붙는 옷을 입어본 경험이 없었다. 샛째로 튀어나온 뱃살과 크나큰 엉덩이를 남들에게 절대,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아쉽게도 요가는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흥미가 이어지지 못했고, 요가보다 신나는 일이 20대의 나에게는 많았다.
신체 콤플렉스가 많았다. 종아리가 두툼해서 ‘무다리’라고 놀림받았고, 엉덩이가 유독 커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기성복 바지가 잘 맞지 않았다. 엉덩이 사이즈에 맞추면 허리도 크고, 허벅지의 통도 큰 어벙벙한 바지를 입고 다녀야 했다. 뼛속 깊이 녹아든 ‘유교걸’의 전통 덕에 가슴의 쇠골만 노출되어도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오른쪽 어깨에는 초등학교 때 접종한 주사의 부작용으로 500원 동전크기만 한 상처가 불뚝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내 옷장 서랍 속에는 어깨를 드러내는 나시와 같은 옷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덕지덕지 축적된 콤플렉스 때문에 한창 꾸미기 좋아할 20대에도 내 복장은 한결같았다. 면 티셔츠에 면바지. 여성성을 드러내는 옷은 내 것이 된 적 없었다. 이외에도 콤플렉스는 더 많지만 구구절절해서 이 정도에서 생략한다. 남의 말에 상처를 잘 받을 어릴 적 콤플렉스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30대, 40대를 통과하면서도 변화보다는 견고하게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몸을 조이지 않도록, 몸이 노출되지 않도록 헐렁한 옷을 입는 것은 기본이고, 이왕이면 천연섬유나 천연염색된 옷을 찾아 입었다. 내 서랍에는 감물, 흑물의 개량한복이 켜켜이 개져 있었고, 가끔 외출할 때 개량한복을 입으면 고지식한 자연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기했다. 자주 거울을 통해 내 몸을 직시하면서 덕지덕지 붙어 있던 콤플렉스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헬스를 할 때는 무조건 거울을 통해 나의 몸을 바라봤다. 동작이 잘 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는 내가 수행하는 헬스 동작을 체크하기 어려웠다. PT를 받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혼자서 동작을 이해해야만 했다. 자칫 집중하지 않고, 내 몸을 주시하지 않으면 다칠 수 있었다. 아픔의 고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은 운동복을 교체하게 만들었다. 빠르고, 시급하게 운동복 구매 사이트를 전전하고, 몇 벌의 타이트한 상의와 레깅스를 갖게 되었다.
헬스장에 가면 전신거울을 통해 내 몸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거울 속의 내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구석진 공간만 찾았다. 하지만 헬스를 꾸준히 하면 알게 된다. 비교적 작은 헬스장이어서 사람들이 한눈에 보이지만, 남의 몸이나 운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콤플렉스여서 자꾸 숨겨두었던 몸을 자꾸 꺼내어 봐주니, 점점 예뻐 보인다. 타이트한 상의와 레깅스를 입은 한 여자가 거울 앞에 선다. 외면하고 봐주지 않았던 몸이 말한다. ‘나 좀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