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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8. 2024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은 다능인의 이야기

이 글은 2022년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에 쓴 글이다.



2022년 1월 24일 22시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이과생, 사범대생, 패션 취준생,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며 n년째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자유를 사랑하며 하고 싶은 것도, 관심사도 많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른을 앞둔 작년 한 해 동안 스스로에 대한 탐색 끝에, 다양한 관심사와 열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다능인(멀티 포텐셜 라이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어쩌면 생각보다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무수한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던 2021년을 기억하며.


 어릴 적부터 시선을 유난히 의식하는 편이었고, 나 자신보다도 내 사람들을 만족시켜주고 싶었다. 당신의 가족, 당신의 친구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음악을 사랑했다. 휴일에도 네식구가 살고있는 크지 않은 집에서 온 방문을 다 열어놓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기악부, 중창부, 심지어는 리코더 중주까지 모든 음악 활동에 참가하였고 점심시간에 밥도 거르고 혼자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를 치곤했다.

 마냥 즐기는 정도로만 해서는 안될 나이였으니 고등학교 진로를 고민해야 할 때에 음악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줄곧 해오던 음악적 재능을 살려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상담 끝에 성적이 조금 아깝다는 피드백과 함께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바람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음악을 즐기는 것 정도로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하고 싶은 건 참 많았지만 학업을 포기하기엔 무척이나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범생이였다. 무난하게 시골 고등학교에서 상위권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길은 막막했다.

'시골에서 이 정도 해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범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과 상담을 하였다.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평범함을 거부하던 나는 패션학회에 가입하며 패션 업계 커리어우먼을 꿈꾸었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사범대생인 내게 그나마 가장 안전한 길이었던 임용 고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공부를 했기에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았고 보통은 2년 이상이 기본인 고시 공부를 한 번 더 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더이상 타협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스타트업 리빙 브랜드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리브랜딩부터 함께 하게되어 시작부터 전쟁이었다. 야근을 일삼으며 막내로서 할 수 있는 잡다한 업무들을 매일 이어가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팀원들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참아왔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마도 20대의 끝자락에도 이 말을 듣고 있는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던 나는 20대의 마지막 해를 앞두고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2021년이 되던 1월 1일 새벽, 울리는 알람 소리에 우리 가족은 여느 때처럼 어둠이 걷힌 바닷가로 향했다.

"2021년은 수빈이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 엄마랑 아빠, 그리고 오빠 우린 다 괜찮아 이제."

2021년이 되던 해, 늘 그렇듯 연례행사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엄마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그리도 마음이 쓰이나 보다.

엄마가 그렇게 나즈막히 읊조렸던 그 말을 잊지 못한다. 


29살이 되던 해, 내가 행복해야 나의 사람들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비로소 온전한 나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1년, 고민이 참 많은 해였지만 그만큼 내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해졌기에 20대의 마지막, 그 의미가 참 남다르다. 이제는 후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은 과감해졌다는 것.

 그렇게 작년 한 해 새로운 사람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찾아 헤맸다는 표현이 맞겠다.) 보통의 다수가 가는 안정된 길을 가는 사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람, 다양한 길을 이미 가본 사람.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깨달은 건 나는 의외로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실상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고 그들은 또 앞으로도 어디로 갈지 그들조차 모른다는 것. 

 사실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의 자랑스러운 가족 그리고 친구이고 싶었다. 스스로에 대해 분명히 잘 알면서도 세상이 말하는 정답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대화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이제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 방황을 한 듯하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모두가 수많은 과정 속에 있는 자신을 잘 토닥여주고 껴안아 줄 수 있기를.

"그래서 너는 무얼 하고 싶니?"

글쎄, 모르겠다. 명확한 대답은 여전히 어렵다.

다만 다능인으로서의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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