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살아온 나의 할머니

만 100세 생신을 맞이하며

by 민주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오늘은 할머니의 만 100세 생신이다. 고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만 100세’라는 시간은 여전히 상징적이고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세기를 살아냈다는 말이니까.

1926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독재정권과 민주화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삶. 나는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순간들을 할머니는 실제로 지나오셨다. 그 긴 시간들을 버텨내고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깊이 감사하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태어나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선명해졌다. 지금처럼 의료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 네 아이를 낳아 키워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렸을 때는 그저 ‘우리 할머니’라서 좋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함께 생긴다.


작년 낙상 사고 이후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비록 걷는 것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정정하시고, 다시 걷고 싶다는 의지도 단단하시다.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조차 따라가기 벅찰 때가 많은데, 할머니는 그 변화를 밀어내지 않고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고 계신다. 그 모습이 참 멋있어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백 년 인생 중 나는 어느덧 삼분의 일을 함께 보냈다. 기억나는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유치원 시절의 체육대회다. 엄마는 오빠에게 가고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운동장에 섰다. 정확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사진 속에서 할머니와 내가 손을 잡고 해맑게 뛰어가던 모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제는 걷는 것도 쉽지 않으시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라도 함께 걷고 싶다.



또 하나의 기억은 내 어린 시절 생일마다 있었던 떡케이크다. 큰 백설기 위에 앙금으로 정성껏 꾸며주신 케이크는 예쁘고 무엇보다 참 맛있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할머니의 손길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재주를 닮지 못했지만 대신 한 가지를 준비했다. 이번 백 번째 생신을 기념해 ‘백(百)’ 자를 새긴 백설기를 맞췄다. 순수와 장수를 의미한다는 그 떡 위에 할머니의 시간을 담고, 앞으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올렸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도 할머니가 이 세상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여전히 든든하다. 손녀로서 받았던 사랑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이 마음만은 늦지 않게 전하고 싶다.


할머니,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