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만 원의 행복
인사를 잘하자. 남편과 내가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절 중 하나이다. 특히 남편은 누구보다 이 인사를 자주, 그리고 자연스럽게 건네는 편이다. 연애시절 내가 남편에게 반했던 순간도 그런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우리는 아이에게 "인사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아이가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때쯤엔 배꼽손 인사를 먼저 가르쳤다. 여러 번 반복한 덕분일까 아이는 인사를 꽤 잘하는 편이다. 낯가림도 적은 편이어서 모르는 친구를 만나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안녕~" 하고 아이를 보고 귀여워하는 어른들에게 "인사할까?" 하면 귀여운 발음으로 "안녕하세여~~" 한다.
사실 내가 더 낯가림이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과는 더더욱 말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특히 내 아이를 보고 귀여워해주는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를 한다. (남편에게 영향받은 것도 있다.)
인사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말을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정말 아이의 인사로 세 번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신기하게도 부산에서.
첫 번째는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중에 우리 뒤편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앉았다. 아이의 정면에 있다 보니 아이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아직은 호기심에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우리는 괜히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아이도 우리를 따라 고개 끄떡과 함께 인사했다. 어른보다 아이의 인사가 더 파급력이 커 다소 거리가 있는 위치에서도 이모, 삼촌들이 너무나 귀여워해주었다. 우리도 그 모습이 흐뭇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도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식사 마딧게 하세여~"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하는데 식당에서 한 분이 우리를 다급히 부르며 뛰어나왔다. 아까 그 관광객 중 한 명이었다. 아이와 함께라면 워낙 정신이 없어 우리가 또 무얼 두고 갔구나 생각하며 돌아섰는데 그분이 아이의 손에 인형 한 개를 쥐어 주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보라색 토끼인형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탓에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에게 그분은 "인사가 너무 예뻐서요. 선물 주고 싶어요"라며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한국에 놀러 와 준 손님에게 우리가 선물을 받은 형국이라니. 잠깐 가볍게 나와 아무것도 드릴 수 없어 더 아쉬웠다. 무한한 감사함과 함께 우리는 돌아왔고 아이는 그 인형을 (이모가 준 토끼라서) '이모토끼'라고 지칭하며 지금도 너무나 좋아한다.
두 번째 역시 부산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좀 더 간략히 적자면 역시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바로 옆에 할머니가 계셨다. 아이는 역시나 다른 손님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시장 안 식당이라 사람들 간 거리도 가까워 아이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옆에 계신 할머니를 시작으로 아이의 인사릴레이가 시작되었다. 팬미팅하듯이 모든 손님들에게 인사를 마친 아이에게 할머니가 어린이 비타민을 손에 쥐어주셨다. 손자에게 주려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비타민인데 선물로 주신다며. 인사 하나 했을 뿐인데 아이는 또 한 번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해 해운대 달맞이길에서 벚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징징이 모드에 돌입한 아이와 함께 예쁜 벚꽃을 힘겹게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던 할머니를 보고 남편과 아이가 함께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아빠의 품에 안겨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 건데도 어린아이가 기특해 보였는지 할머니가 다가와 지갑을 꺼내셨다. 놀란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막아보았지만 "인사를 잘해 너무 기특하다"며 만 원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셨다. 아이는 용돈을 받았다고 신나 하며 징징이 모드마저 해제되었고, 우리도 감사한 마음에 여러 번 연신 꾸벅 인사했다.
세상에. 인사 한 마디에 선물도 받고 돈도 벌다니. 대가를 바라고 한 인사가 아니었지만 인사를 잘하니 이렇게 복이 생긴다는 사실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친 건 ‘인사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먼저 말을 건네고, 먼저 마음을 내어주는 일. 그 작고 사소한 행동이 이렇게 큰 따뜻함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인사는 결국 관계를 여는 첫 문장이다. 그 문장을 아이가 잘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