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미니멀리스트 되기

기록을 위한 기록 줄이기

by 민주

기록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자극을 받는다. 새로운 방식이 흥미롭고, 나도 이런 기록을 남기면 삶이 더 단단해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기록 노트가 하나둘 늘어났다. 하루 일과를 쓰는 노트, 감정을 적는 노트, 독서 기록, 아이와의 순간을 남기는 노트까지. 그 많은 기록 속에서 오히려 나는 더 산만해졌다.


기록은 삶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도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보다 하루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이 더 벅찼다. 오늘도 감사한 일을 세 가지 적어야 하고, 지출도 기록해야 하고, 아이가 한 말도 놓치지 말아야 했다. 기록을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고, 정작 나는 그 기록을 돌아볼 틈도 없었다.


기록이 나를 위한 것이어야 했는데, 어느샌가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남기느냐’가 아니라 ‘왜 남기느냐’인데, 그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기록 미니멀리스트는 기록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록 루틴을 가진 사람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기억을 정리하는 사람.

많은 것을 남기는 대신, 정말 필요한 기억만 남기기로 했다. 쌓아두는 것보다 덜어내는 쪽을 택했다.


첫 번째 정리는 가계부에서. 기록 미니멀리스트로서 내가 처음으로 덜어낸 기록은 엑셀 가계부였다. 5년 가까이 써오면서 해마다 양식을 바꾸고 기능을 더하다 보니, 보기에는 복잡하고 그럴듯했지만 나에게는 점점 부담이 됐다.


그래서 물었다. 나는 왜 가계부를 쓰는가?

1) 남편과 나의 재정 상태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2) 카드 소득공제 금액을 미리 계산하기 위해

3) 카테고리별 소비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이 세 가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과감히 덜어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삭제한 건 ‘포인트 혜택’ 항목이었다. 소비를 한 후 카드사 앱에 들어가 얼마나 포인트가 쌓였는지 확인하고, 그걸 다시 적는 일. 시간이 지나면 확인조차 어렵고, 남편의 폰을 빌려야 하는 불편함까지 있었다. 수고에 비해 얻는 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기록을 위한 기록’을 덜어냈다. 이제는 기록을 더 잘하기 위해 기록을 줄이려 한다. 기록을 덜어냈지만 오히려 나의 목적에 더 가까워졌다.


기록 미니멀리스트로서, 나는 앞으로도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기록은 나를 위한 것인가,

기록을 위한 것인가?


그 질문에 ‘나를 위한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기록을 남기려 한다. 그렇게 꼭 필요한 기록만 남기는 삶을 향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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