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부터는 총 15개의 반 중 1반부터 8반 까지는 문과, 9반부터 13반 까지는 이과, 14반과 15반은 예체능반으로 나뉘었다. 예체능반에는 음대, 미대, 체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섞여있었다. 음악 : 미술 : 체육 입시생의 비율은 1:2:1 정도 되었다. 14반은 음대 준비생과 미대 준비생 절반, 15반은 체대 준비생과 미대 준비생 나머지 절반으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는 문과와 똑같이 학업 진도를 나가고 모의고사를 치르되, 전체 수업시간의 1/3 정도를 차지했던 '전공' 시간엔 각각 음악, 미술, 체육 입시를 준비했다. 처음 전공 시간을 마주한 날의 그 서걱거리던 기분이란.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였는데 막상 남들 공부할 때 나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대세에서 벗어나 비주류의 삶으로 서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달까. 설렘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2학년 2학기 전공 시간. 체대 입시 인생 첫번째 위기가 닥쳤다.
중간고사 실기 과목이었던 허들 뛰기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몇달 전부터 삐걱거리고 조금씩 통증도 있어왔던 오른쪽 무릎이 그날따라 유독 안 좋았다. 보통 몸 어딘가가 불편할 때마다 오히려 더 움직이고 열을 내서 극복 해왔기에 그날 역시 무릎 통증을 무시하고 평상시처럼 운동을 했다.
왼발로 허들을 넘고 오른발을 디딘 순간, 오이 부러뜨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정체가 뭔지 판단을 하기도 전에 무릎에 둔탁하고 묵직한 통증을 느끼며 앞으로 쓰러졌다. 선생님 부축으로 스탠드에 가려고 했는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쿡하고 찌르는 아픔에 아예 깨금발로 이동해야했다.
병원을 찾아갔다. 무릎의 연골(반달 모양이라고 해서 반월상 연골이라고 한다)이 찢어졌단다. 연골의 바깥 부분이 찢어졌다면 혈관이 닿는 부분이기에 자연 치유가 될 수 있지만, 운이 나쁘게도 나는 혈관이 닿지 않는 연골의 안쪽이 찢어졌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통해 찢어진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어 내야한단다. 다행히 수술은 1주일 정도 후에 바로 가능하고, 수술만 잘 되면 일상 생활에도 크게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목발을 짚고 병원을 나오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체대 입시생이었다. 몸이 시험 도구인 체대 입시생에게 무릎 수술이라니. 혹여나 수술이 잘못돼서 걷는 것조차 어려워지면 어쩌지? 의사가 말하는 일상 생활이라는게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걸까?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 얼마나 쉬어야하지? 운동을 쉬면 운동 능력이 엄청 떨어지는건 아닌가? 처음으로 미래가 암담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