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이 주는 생동감: 오사카 루이비통 매장에서

헤리지티 위에 생동감을 더하는 법

by 디그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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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오사카 미도스지 거리를 걷다 보면, 중력을 거스른 채 도심 한복판을 항해하는 거대한 흰색 돛과 마주하게 된다. 건축가 준 아오키가 설계한 이 건물은 밤의 어둠을 배경 삼아 스스로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평소 건축물이 가진 조형미를 탐닉하는 것을 즐긴다. 청담동 플래그십 매장들을 '레퍼런스' 삼아 산책하며 브랜드가 공간에 심어둔 언어를 읽어내려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이곳의 에너지는 유독 생경했다. 160년 넘는 시간을 지켜온 루이비통의 견고한 헤리티지 위에, 쿠사마 야요이의 강렬하고 강박적인 노란 도트가 쏟아져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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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안에서는 그녀를 똑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무표정한 얼굴로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0.5초 간격으로 깜빡이는 인공 속눈썹, 붓을 쥔 손등의 미세한 떨림. 그 기묘하고도 완벽한 정교함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루이비통은 왜 이토록 낯선 풍경을 우리에게 던지는 걸까?'


내가 내린 답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였다. 클래식한 브랜드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권위'가 아니라 '익숙함'에 의한 노화다. 루이비통은 쿠사마 야요이의 파격적인 예술성을 빌려와 자신들의 로고 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전통이라는 성벽 위에 요즘 세대의 감각을 한 스푼 얹어, "우리는 결코 늙지 않으며 여전히 가장 힙한 항해 중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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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을 둘러보고 내 발걸음은 'LE CAFE V'로 이어진다. 최근 두바이에서 본 록시땅 카페도 그랬지만, 왜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F&B(식음료)라는 전장으로 뛰어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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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 공간의 공기를 마셔보니 알 수 있었다. 브랜드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맛보게' 하려는 지능적인 설계였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소유하는 경험은 일생에 단 몇 번뿐일지 모르지만, 3만 원짜리 디저트를 통해 브랜드의 안목을 '시식'하는 경험은 훨씬 더 쉽고 반복적이다. 루이비통이 고른 원두의 향과 디저트의 질감을 경험하는 순간, 브랜드는 고객의 일상 속에 아주 깊고 선명하게 포섭된다.


2년 전의 사진첩을 다시 꺼내 보며 깨닫는다. 진짜 럭셔리란 화려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장면'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 건축으로 시각을, 로봇으로 호기심을, 카페의 향으로 미각을 장악하는 루이비통의 집요함은 나에게 묻는 듯했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장면으로 남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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