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6개월간 한 직장에서 근무를 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진 퇴사를 했다. 별다른 대책도 없었고 영어공부나 빡세게 해 보자는 심정으로 통번역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시험 준비를 위해 3개월간 1인 독서실을 끊어서 공부를 했다. 통번역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영어야 뭐 다 이어지는 거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토플을 공부했다. 그것도 인생 처음으로 토플을. 대학에선 취업을 위해 토익을 공부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토익 성적은 유지를 하고 싶어서 이따금씩 토익 모의고사를 풀며 토익 시험을 쳤었다. 여하튼 토플은 그때 공부가 처음이었다. 운 좋게도 통번역대학원을 합격하고 그 후 2년이라는 대학원 생활은 인생 최대 고난의 연속이었다. 수없이 자퇴를 고민했고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흘린 눈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은 그 시절. 한 학기가 지날수록 동기들의 수는 급감해 갔고 2학년을 마치고 졸시를 칠 때 동기 수는 정확히 50%만 남았다. 난 그 존버 50%의 한 명이었고 대학원 2년 아니 정확히 입학 후 일주일을 다니고서 난 통역이 아닌 번역이 내 실력이나 내 성격에 맞다는 걸 깨달았다.
힘든 2년의 대학원 시절을 끝내고 프리랜서 번역사와 내 17년 6개월간의 경력을 가진 해운업 양쪽에 이력서를 넣었다. 2년 돈 한 푼 벌지 않고 쓰기만 한 후, 돈이 벌고 싶었다. 역시나 경력하나 없는 프리랜서 번역사보다 17년 6개월의 경력이 사회에 더 먹혔다. 고민을 하다 난 다시 해운업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17년 6개월을 다닌 해운업의 탑을 차지하던 회사에서 받던 연봉보다 훨씬 높은 연봉과 회사 주식 등 금전적으론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난 그 회사를 정확히 1년을 다니고 2022년 4월 퇴사를 했다. 그리곤 이제 양다리가 아닌 한 곳만 몰빵 했다. 프리랜서 번역사.
쉬면서 이력서를 넣고, 샘테를 치르고, 합격한 곳에 등록 절차를 거친 후 일감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 쪽은 페이팔로 돈을 받는 데다 수수료를 피하려다 보니 인보이스를 보낸 후 실제 내 통장에 돈이 꽂히는 데는 근 두 달이 걸렸다. 그렇게 처음 통장에 돈이 들어온 날짜가 2022년 8월이다. 하지만 첫 번역이었고 소량의 번역이라 금액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일 같은 일을 하고 돈을 받기 시작한 건 내 기준으로 2022년 10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이제 프리랜서 번역사 1년을 채웠다.
퇴사를 하고 난 나름대로 열심히 가정 경제에 크게 일조를 했다고 자부했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맞벌이를 쭉 해 오면서 내가 남편의 월급과 내 월급을 모두 관리하고 남편은 용돈을 받아 생활하다 보니 맞벌이라고 본인 자신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 한편으론 몹시 억울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번역을 하면서 번 돈의 10%를 한번 본인에게 줘보라는 거였다. 참, 한 가지 빼먹은 이야기가 있다. 결혼하면서 줄곧 내가 관리하던 두 사람의 월급을 남편이 2018년 12월, 3년 계약으로 중국을 가면서 남편의 월급은 남편이 관리하고 본인이 쓸 돈을 빼고 나에게 남은 돈을 입금시켰다. 그 의미는 이제 나는 남편의 연봉도 모르고 본인은 거의 다 준다고 하지만 여하튼 나는 금액을 알지 못하고 주는 돈을 받는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MZ세대처럼 각자 월급은 각자 관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서 남편은 받는 돈 거의 다 준다면 동의할 수 없다고 나올지 모르지만...
결론은 남편의 말도 일부 타당성이 인정되어 나는 남편이 제시한 10%가 아닌 5%를 매달 말일에 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12개월간 내가 번역으로 번 돈의 5%를 남편에게 줬다. 프리랜서라는 게 벌이가 일정한 게 아니고 어떤 달은 정말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아주 작은 돈을 벌 때도 있고 어느 달은 직장인 사원 월급 정도를 벌 때도 있다. 하지만, 1년을 뒤돌아 12개월간 번역으로 번 돈의 총합을 계산해 보면 신입사원 연봉에 못 미친다. 고작 이 정도 벌었나 싶기도 하지만 실제 내가 일한 시간이 직장인의 3분의 1 정도라 보면 나쁘지 않은 연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실제로 일한 시간을 일일이 계산해 보지 않았으니.
사실 남편에게 매월 말 주는 5%를 도중에 중단하고 싶었다. 시작은 돈 버는 아내를 뒀어도 용돈을 받던 시절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는 말에 '그래? 그럼 그때보다 너무나 작은 돈을 벌지만 5%는 줘 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남편의 월급과 내가 버는 돈을 볼 때 정확한 남편의 월급은 모르지만 대충 짐작해 보아도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내가 매월 주는 5%의 돈은 남편에게 정말 보잘것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전혀 경제적으로 조금 윤택해질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중단하고 싶은 두 번째 이유는 자존심이다. 나의 피해망상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남편이 그 잘난 회사를 버리고 나와서 이거 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물론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여하튼 가끔은 남편에게 내밀기조차 부끄러운 액수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중단하고 싶다는 5%의 돈을 달라고 한다. 주기로 했으면 줘야지 안 주는 게 어디 있냐고 한다. 허허... 난감한 일일세.
최종 결론은 난 이 5%의 돈을 세금으로 치기로 했다. 남편에게 내는 세금. 그렇게 나는 3.3%의 원천징수세세를 내고 남편에게는 5%의 세금을 낸다. 총 8.3%의 세금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