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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Feb 29. 2024

번역, 때려치워?!?

기계번역, 나랑 한 판 붙자!

이번 모기업에서 휴대폰에 통번역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광고가 나오면서 남편 왈, “넌 끝났다.” 친구에게 전달받은 그쪽 남편 왈, “xx 씨, 우짜노?” 주위가 이런들 나는 어떻겠는가? 이미 오랜 구력으로 자리를 굳힌 번역가도 이런 시장의 변화로 예전 같지 않을 텐데, 나는 이제 2년 차에다 아직도 번역일을 찾아 기웃거리고 샘테를 치며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초보 번역가다. 누구는 최소 3~5년 차는 넘어야 고정된 일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젠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번역 프리랜서로 나서면서 생각보다 이른 데뷔와 일거리에 만족했다. 하지만 2023년 초부터 AI번역이 나오면서 물량이 주춤하는 게 보였다. 목표로 한 몇 개의 번역에이젼시에 샘테 합격 후 등록이 되었지만 번역 물량은 드문드문했다. 나 또한 시장에 발맞춰 초반에는 영한 번역을 하다 이제는 80% 이상을 한영 번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제 어떻게 에이젼시로부터 연락이 올 지 모르는 상황. 너무 텀이 길 때는 각 에이젼시 PM에게 문의를 한다. 나의 번역 품질 문제인지, 아니면 번역 일거리가 줄어서인지. 3~4군데 모두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번역 일이 줄었어요.”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 ‘아, 내 번역품질에 문제는 아니구나’. 또 다른 한편으론, ‘어쩌지?’ 후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판 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요즘 최대의 고민거리다. AI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닌데 정작 나와 관계가 없을 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일부 업무가 동남아로 이전됐다가 어느새 자동화로 인력 및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지만 나의 생계를 가로막을 정도의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남편은 IT에 종사해서 그런지 10년 전부터 얘길 해왔다. 이제는 what이 아닌 where이라고. 즉, 무엇을 아느냐가 아닌 어디에서 정보를 빨리 얻느냐에 달려있다고. 대충 이해는 갔지만 뇌 한편으로는 뭘 알아야 어디서 정보를 구할지도 아는 거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변하지 않는 것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편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평생 영어를 놓은 적이 없다.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정말 놓아본 적은 없다. 회사에서는 더 나은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더 나은 이메일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번역일을 하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번역 품질을 높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요즘 영어 공부를 할수록 현타가 온다. 열심히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맞나?’, ‘내가 기계번역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기계번역보다 더 높은 품질의 번역을 하는가?’, ‘번역 속도는?’ 의문투성이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회의감이 들고 마음이 너무도 어수선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세상이 양극단으로 나뉠 것 같다. AI를 지배하는 사람, AI의 뒤 치다꺼리를 하는 사람. ‘뒤 치다꺼리’라는 표현이 그렇긴 하지만 번역을 보자면, AI 번역기를 만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AI 번역의 오류를 찾아내는 번역가가 있다. 사실 요즈음은 AI번역 오류를 잡아내는 번역일이 많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고사했는데 요즈음은 이 또한 고민이다. 시대에 편승해서 이런 일도 타협점이 생길 수 있다면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순수한 번역일만 고집할 것인지. 


이제는 고집부릴 시기는 아닌 것 같다. 눈과 귀를 열고 시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엉뚱한 곳에서 삽질할 순 없다. 제한된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우선 고민해서 선택하고, 수정하고, 그런 시기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이 든다. 그 또한 세상의 변화라면 받아들여야지. 중요한 건 움직이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일을 계속해 나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잡생각을 덮고 공부는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제 학습이 필요하여 환경을 만들었고 더 해보기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제는 죽는 날까지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내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다. 갈대처럼 흔들리겠지만, 흔들리면 흔들리고,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 바꾸면 되는 거다. 그렇게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올해 2024년을 보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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