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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N Mar 19. 2019

[서사의 분말상자] '아이 캔 스피크' 리뷰

2017.9.27. 왓챠. 프리퀄.

기나긴 추석연휴. 가족급 이상의 인원으로 영화관을 향한다면, 대부분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함께 스크린을 경쟁하고 있는 세 편의 작품들 중, 「킹스맨2」의 경우 시리즈물이다보니, 「살인자의 기억법」의 경우 스릴러 장르이다보니, 가족들이 다 함께 보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작 「아이 캔 스피크」는 여느 명절특선 영화들과는 다른 위상을 가진다. 우리가 명절에 느끼기를 소원하는 포근하고 소박한 가족적 즐거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막대한 사실들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후 스포일러 Exist)
일단 캐스팅 면에서는 한 점 부족함 없이 적절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나문희 선생님은 그 익숙한 해학과 동시에 어머니의 포근함(비록 작 중 누구의 어머니도 아니지만)이나 절절하게 사무치는 감정선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버무려내신다. 거기에 「건축학개론」, 「시그널」,「박열」에 이어 또 하나의 옷을 소화해낸 이제훈과의 케미스트리도 감상하기에 충분한 만족감을 이끌어 낸다. 서브 캐릭터들도 연기력으로는 아쉽지 않은 익숙한 얼굴들이 맡고 있으며, 줄거리의 개연성과 중반부에서의 국면전환(사실, 예고편을 보지 말걸 그랬다.)도 어색하지 않게 잘 짜여졌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제훈이 미국 법원의 문을 뚫고 들어오는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측면이 있다.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한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 장면을 일종의 '낯설게 보기' 기법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관점에 의하면 후반부 상황은 이렇다. 법원에서 네덜란드 피해자의 증언이 끝나고, 나옥분 여사가 기자들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까지 작품에 몰입해있던 관객들은, 부자연스러운 이제훈의 등장으로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나옥분 여사가 말해내려 하는 것들을 여실히 전달하고, 그녀를 의심했던 기자들은 'I am sorry'하며, 일본측 극우들은 속시원히 빠가야로 소리를 들으며 퇴장한다. 거기에 자신을 거부했던 동생마저 찾아와 사과하며 눈물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말할 수 있었는가?
영화에 드러난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H.Res.121)의 통과는 2007년.
그 후 10년이 지나버린 지금, 양국 간에 현실적으로 유효하게 남은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다. 끝내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작품을 꿰뚫는 또 하나의 서사는, 나옥분 여사가 20년을 아껴온 생활공간의 재개발 문제였다. 9급 공무원 이제훈이 구청장에게 제시한 '참으로 공무원스러운 해법'은 이것이었다. '일단 행정소송을 걸고, 어차피 규정 상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 패소한 뒤, 우리는 할 일을 다 했다고 하면 됩니다.'
이 한마디에 나옥분 여사가 몇 년을 모아 온 증거자료는 모두 파쇄되었고, 용팔이들은 족발집을 뒤엎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속여 팔게 해 영업정지를 시켜버리기도 했다. 재개발 지역에서 명백히 실존하는 서사이지만, 동시에 재개발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치열하게 싸울 생각이나 의지조차 없는 것이다. 당장 곤란하지 않기 위한 자신들의 예산이 필요할 뿐. 
덧붙여 작품이 끝날 때까지도, 재개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종료된다. 혹자는 떡밥 회수에 실패했다고 말할 지도 모르나, 이것이 그나마 가장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결말이다. 일시적인 방편.
유명한 평론가의 한줄 평처럼, 영화를 본 이후, '아이 캔 스피크'라는 어구는, 그 이전과는 다른 무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울림은 'I can speak'가 아닌 '아이 캔 스피크'여야만 유효한 어떤 것이다. 민족의 자주의지와 같은 것들. 작품 맨 마지막의 여권에는 'I Can Speak'가 적힌다. 그리고 그 해석은 '말할 수 있다'가 아닌 '할 말이 있다'로 적혀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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