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안이를 위해서
나는 11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요즘 들어 부쩍 독립심이 강해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인사이드 아웃2를 함께 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춘기가 올 테니까.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예방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이의 모습을 대입하면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겠지 라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보았다.
라일리의 사춘기... 폭주하는 불안이와 보내져 버린 기쁨이를 보면서 나는 라일리가 정말 나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힘든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가 가진 그 힘든 경험이 타인보다 더 불행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 또한 누구나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힘든 일에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하며 내가 마치 가장 불행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려면 힘들고 슬픈 일을 잊어야 했다. 기쁨이가 라일리의 슬프고 힘든, 창피한 기억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주 사소하더라도 행복한 기억만 장기기억소에 가둔 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나의 기쁨이가 슬픔과 힘듦을 걷어내고 만들어 준 나의 신념은 30대가 된 후에도 늘 휘청거렸고, 사실 신념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내 마음속에 있나 싶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많이 약해진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늘 내가 신념이 있는 사람인가를 자주 반성하며 살았었다. 좋은 기억들로만 억지로 만들어 낸 나의 신념은 힘든 상황이 왔을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회피하도록 했고, 나는 그렇게 늘 도망치며 다시 행복을 찾고, 또 도망치고,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착각했다. 집을 사고,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사고 싶은 옷을 사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가면서 이렇게 살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니 영화 속 기쁨이가 했던 모든 일이 내가 무의식 중에 나에게 했던 일들 같았다. 나의 기쁨이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 그런 거겠지? 나의 불안이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내가 대학생일 때까지 내 마음속에서 폭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안이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불안함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불안이 덕분에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었고, 모든 일에 미리 대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컸다. 이제 나이 마흔이 되어보니, 오래도록 애쓰고 있었을 나의 불안이가 너무 고맙기도 딱하기도 하다.
나의 기쁨이는 기쁨이대로, 나의 불안이는 불안이대로, 각자가 내 마음속에서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둘은 함께 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 기억 속 저 편에 꽁꽁 숨겨두었던 나쁜 기억, 슬픈 기억, 힘들었던 기억을 억지로 더 감추려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것 또한 나의 기억인데... 그것 또한 나인데...
곧 사춘기가 될 나의 아들에게도 곧 불안이가 찾아오겠지? 그 어떤 기억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가르쳐주고 싶다. 그것이 모두 너의 그대로이고, 그것이 미래의 단단한 네가 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들! 너의 불안이에게도 너를 믿어주고 많이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기쁨이가 본부의 중앙에 있도록 엄마와 아빠가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처럼, 엄마는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