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서 벗어난 사회

by 김인철


지금의 사는 모습 이후 머나먼 미래에서는 모든 인간이 태생부터 계급으로 구분되어 결정된 삶을 살아간다는 가정을 상상해본다. 모든 것이 시작부터 계급사회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기고,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이 계급을 통해 나누어진다. 물론 모든 것이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미술과 음악 장르의 작품들이 탄생했을 때도 이미 그 값어치가 구분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만든 작품과 모든 사람이 한 작품을 보는 눈높이마저도 마치 계급 체계로 나누어진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면 나와 타인은 어떤 모습일까.

다행이게도 이 미래에서는 하루에 두 점의 미술품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어떤 보상이냐면, 주어지는 미술품들은 누군가에게 하루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각자의 행복 기준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오로지 이 미래에서는 미술 작품 두 점만이 누군가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기에 작품 자체가 높고 낮은 계급으로 나뉘어도 괜찮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미술을 창작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오로지 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만 만들어 내려 애를 쓸 것이다. 반대로 계급 사회에서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미술 작품들도 이 미래에서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단 두 점의 미술품이 하루 중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



이 세계에서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계급사회 속 사람들의 기준에 따르고, 계급으로 나뉜 미술이더라도 행복은 동일한 감정이다. 점점 모든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회로 변화되어간다. 그 이유는 누군가에게 필요할 때면 각자만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미술 작품들이 하루에 두 점이 주어지고 이를 통해 계속해서 하루 종일 스스로가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부작용이 없는 마약과 같은 솔루션인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타깝게도 매일 보상으로 주어지는 미술 작품들에는 부작용뿐만 아니라 중독성도 없다. 중독성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는 오늘 하루 주어진 두 점의 미술 작품에 젖어들지 못하고 이를 계속 처방만 받으려는 단일의 목적으로만 여기고 미술의 의미가 국한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오늘 누군가에게 주어진 무엇인가가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주더라도 오히려 스스로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감을 잃은 채 살아갈 수도 있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 매일 주어지는 미술이 비록 일시적 행복을 준다 하더라도,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지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게 한다. 마치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 마약처럼 말이다. 진정한 중독성마저 없는 미술이라면 보상의 의미를 떠나 과연 그 세계에서 멋진 작품일까, 그리고 그런 세계가 과연 멋진 세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