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미술이 아닌 다른 무엇이 하루의 행복을 채워주더라도 그 미래가 과연 누군가의 진정한 행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세계일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누군가는 때때로 무언가가 자신에게 영원한 행복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 일컫을 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이 하나의 유명한 그림처럼 아름답지는 않아도 중독성이 있는 삶이라면 그 삶은 행복한 것이다. 다만 영원한 행복은 추구할 수 없더라도 중독성이 있는 삶이라면 말이다.
계속해서 일시적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상상해본다. 무엇이 좋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순 없지만,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서 행복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런데, 육안으로 느꼈던 공감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단지 오늘 하루에 주어지는 미술 작품을 통해서만 느끼는 사회에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매일 여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눈에 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둘러보고 난 후에 전시를 둘러보며 찍었던 사진을 공유하며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 서로 공감을 하지 못하더라도, 전시장에 있는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한 공감대마저 계급 체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은 사라져갈 것이다.
미술에 대한 어느 비판과 비평도 더 이상 대단하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비평은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내뱉거나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비평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어떤 대상을 비판하거나 비평한다는 것은 자유이더라도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작용을 떠안고 자유와 책임이 바탕이 되는 어느 행위를 굳이 누군가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무의미한 세계이다. 미술은 계급에 따라 나누어져 단지 일시적 행복만을 위한 도구일 뿐이기에 내가 미술을 통해 느꼈던 공감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있음에도 그럴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적어도 어느 세상에서 살고 있고 또 살아가게 되든, 나는 일시적으로 미묘한 행복감을 주거나 짤막하지만 지속될 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에 중독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다른 누군가와의 공감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미술은 좋아하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누군가의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