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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23. 2018

암기와 연기, 의대생활

어떻게 의사가 되는가 2

  스타크래프트에 미친 친구 종철이가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이 지키는 복도를 피해 2층 교실 창문에 뛰어내리고, 연애에 미친 대연이가 독서실 앞 벤치에서 책 대신 여자 친구와 설왕설래를 할 때, 고등학교 3년간 잠과 싸우며 오로지 공부만 했음에도 한 번 만에 의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수를 해서 겨우 의대에 들어갔다. 


 실력에 다가 이 더해져, 의대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인 줄 알았는데 겨우 시작이었다. 


 텔레비전 의학 드라마에서는 의사, 간호사 모두 예뻤는데, 의대 여학생들은 체대 여자와 공대 여자 사이에 위치한다. 뭐, 여학생들도 의대 남자들을 비슷하게 생각했겠지. 

 2년간의 예과 생활이 끝나면, 4년간의 본과 시절이 시작된다. 수업 시간이 아니라, 1년 만에 한 번 바뀌는 강의실이 뭐가 그리 좋은 지, 아침 9시부터 저녁 5~6시까지의 수업에 지겨울 만도 한데, 몇 몇 동기들은 조금 더 좋은 자리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8시 전에 학교에 왔다. 거기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했다. 말이 대학생이지, 다시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그것도 4년씩이나. 

 거의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시험을 치기에, 금요일 밤을 우리는 술집이나 클럽이 아니라 교실에서 밤을 새하얗게 새우며 불금을 보내고 토요일을 맞이했다. 심지어 침낭을 들고 와서, 교실 바닥에서 잠시 자는 여학우도 있었다. 그녀의 떡 진 머리에 바퀴벌레와 쥐가 함께 하기를. 


 본과 생활의 시작은 일명 ‘골학’, 뼈에 대한 학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누구나 수학 정석을 한 번 보고 오듯, 본과로 들어오기 전에 모두 골학을 해야만 했다. 206개의 뼈 이름을 외우는 것으로 벅찬데, 뼈 하나 마다, 각각의 명칭이 있었다. 지리산이 뼈 하나라면, 지리산에 있는 각 봉우리(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와 수 많은 계곡(뱀사골, 피아골, 달궁계곡, 칠선계곡, 중산리 계곡, 한신계곡, 거림계곡, 백운동계곡, 대운사계곡, 의신계곡)까지 외워야 했다.       



<뼈 하나당 이정도?>1)

  대퇴뼈 하나를 head, neck, body로 시작해서 fovea capitis, greater trochanter, lesser trochanter, intertrochanteric crest, intertrochanteric line, pectineal line, spiral line, gluteal tuberosity, fovea for ligament of head, quadrate tubercle, nutrient foramen, lateral lip of linea aspera, medial supracondylar line, lateral supracondylar line, medial epicondyle, lateral epicondyle, patellar groove, intercondylar fossa, intercondylar line, adductor tubercle 등, 영어의 탈을 쓴 라틴어 명칭을 외워야 했다.  

 너무나도 많은 양이기에 예과 마치고 본과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겨울 방학에 일주일간 선배 자취방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마지막 날은 1박 2일로 ‘합숙 훈련’을 했다. 각 고등학교 동문마다, 대대로 물려오는 실제 크기의 뼈가 있다. 그 당시에는 별로 안 궁금했는데, 글 쓰는 지금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싼 건 70만원에서 비싼 건 200만원이나 한다. 사람 뼈라는 소문도 있는데, 그럴 순 없고, 플라스틱이며, 겉으로 보면 평범한 남색 공구 상자에 담아서 다닌다.  

 장난 끼 많은 한 남자 선배는 지하철 타고가다, 일부러 상자를 떨어뜨려 뼈를 바닥에 쏟아, 주위 사람을 기겁하게 했다는데, 소문일 뿐이다. 그랬다가는 동영상 찍혀 유투브에 올라가거나, 시체를 유기한 살인범으로 신고 당할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일주일간, 각각의 뼈와 뼈의 세부 명칭을 외운다. 본과 선배들이 뼈 하나를 손에 들고, 볼펜으로 각 구조물을 짚으며, 이 홈은 intercondylar fossa(융기사이오목) 여기는 튀어 나온 부위는 gluteal tuberosity(둔근조면, 볼기거친면), 이렇게 하나씩 명칭을 불러 준다. 뼈의 구멍과 홈마다 십 수 년간 볼펜으로 얼마나 문질러댔는지, 원래는 희었을 뼈가 때가 타서 블랙홀보다 더 검고 깊다.       

 가장 쉬운 건 갈비뼈로 대략 10개 정도의 명칭을 외우면 되고, 보통의 뼈는 30개 전후에서 두개골 기저부는 외워야할 명칭은 50개 정도 된다. 영어라고는 하나, 도대체 foramen spinosum(극공, 棘孔)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접형골(蝶形骨)의 대익(大翼)의 후단에서 난원공의 배외측(背外側)에 있는 작은 구멍을 말한다.” 검색은 왜 해가지고. 

 이럴 땐, 그냥 외우면 된다. 왜 의대에 가는ep 삼각함수의 미적분을 알아야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의대생들 모두 삼각함수의 미적분 공식을 외워서 의대에 왔다.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남들 놀 때 의자에 앉아서 교과서 및 문제집 수십권 외워서 의대 온 거니까, ‘왜?’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외우면 된다.   

 선배가 각 부분의 명칭을 설명하는데 20분, 외우는데 20분, 시험 치는 데 10분, 쉬는 시간 10분. 이렇게 한 뼈 당 한 시간이다. 시간은 없고, 외울 뼈는 많다. 일주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골학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 외운 노미나(nomina:해부학 용어) 대신 영어 단어를 외우면, 수능 영단어 5000개는 바로 마스터했을 거라며, 쉬는 시간에 웃으며 농담을 한다. 그 당시에는 참 웃겼는데, 15년 지나서 생각하니 그것도 유머라니, 씁쓸하다.   

 마지막 날은 1박 2일 합숙훈련이다. 본과 신입생은 뼈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하나씩 뽑는다. 그 종이에 적힌 뼈를 하나 손에 들고서, 앞서 일주일간 열심히 가르쳐줬던 선배님 앞에서 각 뼈의 명칭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설명을 하면 통과이다. 물론 간단한 뼈는 제비뽑기에 없다. 

 명칭 하나라도 빠지면 신입생은 벌로 소주 한잔 마시고, 다시 새 제비를 뽑는다.    

 수십 개(206의 뼈에 절반은 대칭이고, 갈비뼈, 척수뼈, 손가락뼈의 구조는 비슷하니까, 실제로 외우는 것은 수십 개 정도)의 뼈 당, 수십 개의 명칭을 100% 외우는 건, 다들 고등학교 때 전국 상위 1~2%안에 들었던 인재였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꼭 스캐너(본 것을 그대로 외우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카피머신이라고도 불리며, 동기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있어서, 선배들을 놀라게 하며, 동기들의 부러움 속에 단 한 번 만에 통과한다. 본과에 올라가서, 남들은 토요일에 있을 시험을 대비해서 월요일부터 공부를 하는데, 이런 ‘스캐너’는 실컷 놀다가 금요일 저녁 8시에 학교에 와서, 수십 장짜리 족보 한 번 보고 다음날 아침 10시에 시험을 치고는 유급은커녕, 항상 상위권을 유지한다. 공부로 어디가서 기죽어 본 적이 없는 의대생들이지만, 이런 ‘스캐너’ 앞에서 ‘천재는 1%의 노력과 99%의 재능’이라는 것을 깨달고 ‘역시 난 머리가 나빠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라며 좌절감을 겪는다. 그나마 이런 스캐너가 한 학년에 많아봐야 한 두 명이라는 사실로 다들 위안을 삼는다. 

 밤이 깊어지자, 다른 동기들은 다 통과하고, 상대적으로 암기에 약한 나만 남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벌칙으로 마신 술로 내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머릿속에 억지로 꽉꽉 쑤셔 넣었던 명칭들은 입과 코로 흘러나온다. 기억나는 노미나(해부학 명칭) 수가 더 줄어든다. 처음에는 그딴 것도 못 외우냐고, 너는 이제 잘해봤자 베이스(base: 사물의 제일 아래, 의대에서는 성적이 낮은 하위권을 뜻한다)고, 유급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화를 내며 꾸짖던 선배는 잠에 취하고, 나는 술에 취했다. 결국 새벽녘에 무식한 나에 지치고, 잠을 이기지 못한 나보다 3살 많던 정원상 선배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에이씨, 넌 도저히 안 되겠다. 날 새겠다. 그냥 했다고 하자. 니 공부 니가 하는 거지. 난 모르겠다.”며 억지로 통과를 시켜 줬다. 

 골학이 끝나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아무리 의대 공부가 어렵지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그렇게 방학기간 일주일간 밤새워서 외웠던 골학이, 본과 1학년 1학기에서 굳이 학점으로 따지자면 0.5점 정도 되는 분량인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좌절을 한다.  

 골학을 했던 버릇이 남아 있어, 친구들끼리 한동안 시험이 없으면, 가끔 녹슬 머리에 기름칠을 할 겸, 지하철 노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거나, 과자 봉지 뒤에 있는 원재료명 및 원산지를 가장 빨리 외우기 게임을 하며 놀곤했다. (소맥분: 밀(미국산), 미강유(태국산), 맛베이스, 조미분말(옥수수전분, 감자전분) 더 이상은 생략하겠다......)   

 우리들은 농담 삼아, 한 달만 이렇게 공부하면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마스터할 수 있을거라고 말하곤 했다. 1학년 1학기에 배우는 해부학만 해도, 고등학교 3학년 전체 과정을 넘는다.  

 거기다 다른 학과와는 다르게 모든 과목이 필수학점이고, 재수강 자체가 없기에 한과목이라도 유급당하면, 바로 그 학년을 쉬고, 1년 후에 유급 받은 과목뿐만 아니라, 그 학기 모든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즉 1학년 1학기 조직학에서 F를 받으면, 다음해 1학년 1학기부터 조직학을 포함한 다른 모든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낙제생이라는 불편한 시선 속에서 말이다.  

 어떤 과목들은 원서가 아니라 족보가 책 한권 분량이고(도대체 그게 무슨 족보야), 아무리 양이 적다해도 왕(매년 나오는 시험 내용). 출(시험에 한 번 출제된 내용). P(이전에 시험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중요하다거나, 이번에 시험에 나올지도 모르는 내용)만 해도 A4 용지로 30장이 넘었다. 

 그걸 외우고, 또 외우고, 자다가도 외우고, 밥 먹으면서도 외우고, 똥을 누면서도 외웠다.   

 2년 6개월 간, A4 용지만 수 만 페이지(매 학기마다 학기 초에 ‘학급비’라는 이름으로, 프린트 출력비로 일인당 수 십 만원을 냈다)를 씹어 먹다가, 본과 3학년 2학기가 되면 드디어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매고, 실습을 나간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외우기만 해서, 정말 나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걸까’라는 불안감과 ‘일단 모르겠고, 이 지긋지긋한 암기에서 벗어나는 게 어디야.’라는 착각(의사고시 및 전문의 시험까지 앞으로 짧게는 1년 6개월, 길게는 7년 후까지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이 주는 해방감 속에서 이제는 매일 아침 9시까지 교실이 아니라, 각과마다 다르지만 아침 7시에서 8시에 사이에 병원으로 등교한다. 

 실습에 앞서, 입학식과 졸업식 다음으로 의대에서 중요한 날인 ‘착복식’이 있다. 말 그대로 착(입을 착:着)복(의복 복:服), 의사 가운을 입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잘 다려진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는다. 참석하신 부모님도 “우리 아들 정말 의사 다 되었네. 이제 엄마, 아빠는 아파도 걱정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의대생 또한, 착복식 날 찍은 사진을 SNS(나 때는 사이월드)에 올리며, 마치 의사가 된 듯한 환상에 빠진다.  

 간호사들과 교수님들, 그리도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우리를 ‘PK(policlinic의 줄인 말, 실습 나온 의대생을 뜻한다)쌤’이라 부르니, 정말로 의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환자를 만나면서 깨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의사가 아니라, 하얀 가운을 걸친 도둑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신경과 실습을 돌 때였다. 뇌경색(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풍)은 신경과에서 치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질환이다. 서서히 진행하여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치매와는 다르게, 뇌경색은 반신마비, 실어증, 구음 장애, 운동실조 등의 증상이 발생한지 3시간(최근에는 4.5시간) 안에 혈전 용해제를 써서,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기에 초응급 질환이다. 여기까지는 책으로 배운 지식이고, 실제로는 환자가 어떤 증상을 겪는지 기본적인 신체 검사를 통해 알아보고 리포터를 내야 했다. 

 내게 주어진 환자는 75세 이주영씨였다. 고혈압, 당뇨로 약을 복용 중이었으며, 4일 전, 갑자기 발생한 좌측 중대뇌동맥의 경색으로 오신 분으로, 뇌경색 후유증으로 우측 편마비과 말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눌하였다. 

 의대생인 나는 이주영씨를 통해서 뇌경색의 증상 및 치료, 후유증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된다. 하지만 환자인 이주영씨 입장에서는, 의대생인 내가 본다고 해서 치료가 바뀌거나 경과가 좋아질 리는 없고, 몇 번은 했던 신체검사를 또 해야 하므로 안 그래도 불편한 몸인데 번거롭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움이라는 명목 하에, 나를 위해서, 편마비로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를 괴롭혀도 되는 건가’라는 불편감이 이주영씨 병실로 걸어가는 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보호자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괜히 아픈 사람 괴롭히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들기라도 하면 뭐라고 말하지.’

 내가 찾아갔을 때는 다행히 보호자가 없어서,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주영씨 상태가 어떤 지 확인 좀 해 볼께요.”

 최대한 아무 감정 없이 말하려고 했으나, 목소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 

 이주영 할아버지는 며칠간 씻지도 못한데다, 코에 꽂혀 있는 L-tube(레빈 튜브: 코에서 위까지 연결된 관으로 유동식 등을 투입하는 데 쓰인다)까지 꽂혀 있어 처량하고 안 쓰러웠다. 거기다 반마비로 인해 한쪽의 얼굴에는 아예 표정이 없고, 다른 반쪽은 여간 불편한게 아닌지 인상을 쓰고 있어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을 반씩 붙여 놓은 듯, 기괴하기까지 했다. 

  ‘아, 이게 바로 안면 마비구나.’

 이주영 할아버지의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편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면서,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의학적 지식 하나를 나는 얻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다가온 나를 보자, “으, 으, 어” 소리와 함께 침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으나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이주영 할아버지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떨리는 내 손을 환자 가슴 위로 살짝 올렸다.  

 “이주영 어르신, 일어나지 마시고, 누운 채로 양 손으로 제 손을 꽉 잡아 보세요.”

 좌측 팔은 잘 올라왔으나, 어깨만 꿈틀거릴 뿐 오른 팔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팔을 옆으로 움직여보세요.”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팔은 좌우로 움직였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grade III는 아니고, 옆으로 움직이니 grade II 정도 되겠구나.’

  팔 올리기부터 해서, 다리 들기, 양쪽 눈에 불빛 비춰서 동공반사 확인하기, 이마 찡그리기와 웃음 짓기도 시켰다. 환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화난 건지, 슬픈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빨간 삼각형 고무패들이 달린 신경 망치로 무릎도 두들기고, ‘바빈스키 사인’2)를 확인하기 위해 발바닥을 신경 망치의 끝부분으로 긁어 댔다. ‘환자가 이렇게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잘 모르겠네.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보자, 또 뭘 체크해야 하더라?’

 그 때였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다가왔다.  

 “선생님, 우리 남편 좀 어떤가요?” 

 등이 잔뜩 굽어, 140도 안 되는 작은 키에, 한 발 한 발 위태롭게 걸음을 때시는 할머니가 며칠 간 잠을 못 잔 건지, 아니면 울어서 그런지 충혈 된 눈으로 잔뜩 긴장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 그게, 주치의 선생님 오시면 물어보세요.” 

 말끝을 흐리며, 나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의사도 아닌데 의사인 척을 했으니, 도둑이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해야 하나. 

 실습을 돌면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외래에서 교수님 뒤에 다른 동기와 함께 나란히 서서, ‘저 사람은 도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야?’라는 환자와 보호자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교수님이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을 관찰해야 했다. 아무래도 과 특성상 정신과 외래에서 환자의 시선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사실을 큰 결심을 하고, 의사 앞에서 겨우 말하려고 하는데, 낯선 사람이 있는 같은 공간에 있는 그런 상황 마음에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산부인과를 돌 때는 ‘실습’이라는 명목 하에, 검진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여자들이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모습을 봐야했다. 소중한 부분에 작은 솔을 넣어 자궁경부의 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을 대수롭지 않은 듯 서서 지켜보았다. 우리 조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수진이는 운 좋게?? 실제로 자궁경부암 검사(일명 팝 스미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으나, 남자인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한 달 내내, 수술실과 검진실만 쳇바퀴처럼 돌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실습 시간이 끝나가는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5시에 실습이 끝나기에, ‘오늘은 있다가 마치고 저녁에 뭐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아이가 곧 나온다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우리 실습조원 4명은 서둘러 분만실로 달려갔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진 분만실 문이 열리자, 우리는 우르르 들어가 환자의 오른쪽 다리 쪽에 벽에 등을 지고 나란히 벽에 딱 달라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혹시라도 마주칠까봐 산모의 시선을 피하면서 산모의 다리 사이에 눈을 집중하였다. 

 고통으로 울음이 섞인 신음소리를 들으면서(산모의 고통이 저 정도인가. 아, 진짜 힘들겠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아이가 태어나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측방 회음부 절개술(헉, 저렇게 그냥 가위로 막 자르는 거였나?)부터해서 아이의 뒤통수를 시작으로 아이의 머리가 나오고(신전), 머리가 좌측으로 회전을 하면서(외회전) 어깨도 빠지고, 그 다음으로 몸통부터해서 다리까지 쑥 나왔다.(만출) 끝으로 자궁에서 바람 빠진 축구공 크기의 붉은 핏덩이가 빠져나왔다.(와, 태반이 저렇게 크구나. 완전 핏덩이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출산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피부는 쭈끌쭈끌하고, 또 청색에 가까웠다. 아이가 첫 울음을 터트렸을 때에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눈물과 땀으로 얼굴이 완전히 젖은 산모가 아이를 한 번 보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보람찬 표정으로 안도감에 빠져들었다. 분만실에 있었던 교수님, 레지던트 선생님, 간호사, 그리고 우리까지 합해서 10명 넘는 사람들이 산모의 감정에 젖어들어, 흐뭇함과 행복을 느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긴장이 풀렸는지 내 눈이 산모의 눈과 마주쳤다. ‘앗, 이런.’ 시선을 바로 휙 돌리기도 그렇고 눈을 어디 두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산모가 약간 부끄러움을 담은 넉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보여주기 싫었지만, 좋은 의사 선생님 되시라고 허락했어요.”

 그 말에 우리 4명 모두,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감사합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말하며, 마음속으로 아이가 튼튼하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축복했다. 물론 그 뒤를 이어 교수님이

 “이 산모가 37주인데 출산을 하는 지 아는 사람?”

 라고 묻자, 우리 실습조는 초토화 되어 다시 깊은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임신성 당뇨로 생각보다 예상보다 빨리 출산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극적인 일은 아쉽게도 극히 드물었다. 교수님과 회진을 돌 때, PK(실습 나온 의대생)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의 길을 막지 않으면서도 후광 효과를 내는 배경이 되는 것이었다. 

 영화 ‘패치아담스’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의대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웃음을 주고, 치료를 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이었다. PK(실습을 나온 의대생)는 poly klinic의 준말이지만, 가운을 입어서 마치 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사람을 잡는다’는 속어로 patient killer(환자를 죽이는 살인마)라고 불렀다.  

 실습을 돌면서 머릿속에서 ‘이렇게 해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누가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상태로 1년 6개월이 지나면 의사가 되면 환자를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침 7시나 7시 30분부터 와서, 교수님을 따라 회진을 돌고, 외래 참관을 하고, 수술방에 들어가고, 각종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에도 파견을 나갔다.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때와는 다르게, 윗단추까지 채운 와이셔츠에 두른 넥타이가 갑갑하게 목을 조여오고, 길다란 하얀 가운 주머니는 삼색 볼펜, 색색의 형광펜, 펜라이트, 가위, 핸드북, 신경망치, 작게 출력한 인계장, 각과 매뉴얼로 불룩해져 양어깨를 눌렀다. 거기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헤드가 꽤나 묵직한 청진기 ‘마이얼’이 더해졌다. (이 청진기 ‘마이얼’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다, 수업할 때 멀리서만 보던 교수님이 바로 옆에 있고, 항상 아픈 환자의 얼굴만 보다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항상 무거웠다. 

 적응할만하다 싶으면,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마다 과가 바뀌었다. 과가 바뀌면, 낯선 장소에서 또 다른 교수님들과 전공의 선생님들, 거기다 달라지는 스케쥴에 새로운 질병과 처음 보는 환자들을 접해야 했다. 거기다 각종 과제와 발표 준비를 해야 했다. 

 교수님들과 레지던트에게 

 “진짜로 환자 본 거 맞아요?”

 “실제로 청진은 해 봤어요? 그렇게 들리던가요?”

 라는 끊임없는 지적에다 지친 몸과 마음이 더해져 ‘나의 배움을 위해 환자를 괴롭히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과 죄책감은 서서히 잊었다. 생각이 멈추자, 멈칫멈칫하던 내 손은 망설임 없이, 환자 배와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고, 마비가 된 다리를 억지로 들어올리고, 무릎을 두드리고, 아픈 배를 누르고, 환자의 혈관에 바늘을 꽂았다. 

 낯이 두꺼워졌다.  

 처음하면서도 많이 해 본 척하고, 속으로 당황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의사가 아니면서도 의사인 척 하면서 근력 검사에서 grade II와 grade III를 구분하고, VSD(심실중격 결손: 심실 사이 벽에 구멍이 나는 질환)의 특징적인 심잡음을 알게 되고, 천식 특유의 천명음을 감별하게 되면서 하나둘 배워가며, 의사가 되었다. 다만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아픈 환자들은 한 번이면 족할 진찰을 아무 것도 모른 채 두 번, 세 번 받아야 했다. 

 그렇게 뼈 이름뿐만 아니라 지하철 노선도와 과자 뒷면의 제품 설명서를 외우는 암기와, 의사 아닌데 의사인 척, 처음인데 처음 아닌 척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얀 가운을 입고 연기를 해가며, 아픈 환자들의 희생 끝에 나는 의사가 되었다.  


 이 자리를 비로소 뇌경색으로 불편한 몸이었음에도, 어떤 동의나 설명 없이 신체 검사를 한 ‘이주호 할아버지’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권정아 산모’, 이 외에도 저에게 진찰할 기회를 주신 수많은 환자들에게 불편을 드려 사과와 함께 감사를 표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는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위 글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


1)http://learn-anatomy.blogspot.com/2009/07/femur-bone.html

2)발바닥을 발꿈치에서 발가락쪽 방향으로 문지르면, 정상인은 발바닥쪽으로 굽는데(발바닥이 가려우면 발바닥을 오므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추체로 장애가 있는 환자는 발등쪽으로 발바닥을 펴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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