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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Nov 26. 2019

그는 왜 그날 환자에게 불친절 했을까?

 의사, 고깃집 알바와 일본 스시 장인

 작년 이 맘 때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두 30대인 2명의 유부남과 한 명의 총각. 약속 장소는 강남의 한 막창집이었습니다. 장소는 제가 정했습니다.

 모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TV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나름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모두 일을 마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저녁 7시 40분입니다. 가게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가 막창집 답지 않게 세련되어 보이더군요.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개가량의 테이블이 두세 자리를 빼고 모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손님들도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로 비교적 젊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나 우리 모두는 배가 고팠습니다. 막창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고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쩝.... 등받이도 없는 작은 의자라 앉아있기도 불편합니다. 가게 공간에 비해 테이블이 많아서 많이 좁았습니다. 간신히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의자를 조금이라도 뒤로 빼면 뒷사람과 닿을 정도였습니다.  

 이거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직원을 부르는데, 홀 서빙을 하는 4명의 남자가 모두 정신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물어봅니다.

 "저기요? 여기 주문 들어간 거 맞나요?"

 "네, 기다리세요."

 20대 후반의 남자 직원은 말투가 딱히 꼬집을 수 없지만 기분이 거슬립니다. 무뚝뚝하다 못해 차갑고, 짜증 난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가 나왔습니다. 직원의 무미건조한 짧은 설명이 이어집니다. 고기를 굽는데, 식당 밖으로 줄을 선 사람들이 보입니다. 식당을 선택한 제가 왠지 잘 고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와, 장사 잘 되네."

 "그러게, 평일인데 줄 서서 먹네."

 "저기요, 여기 맥주랑 사이다도 주세요."

 직원이 듣지 못한 듯 여차 불러서 겨우 주문을 합니다.

 "근데 공간에 비해서 테이블이 너무 많네."

 "그지? 거기다 종업원 수가 적어서 주문도 밀리고."

 "그래도 강남 치고는 싸네. 거기 오 OO은 1인분에 거의 3만 원이잖아."

 "야, 근데 이거 다 익었나?"

 "익은 거 같은데. 일단 먹자."

  다들 돌아가면서 한 두 젓가락씩 먹었을 때,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던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을 지나가다가

 "아직, 다 안 익었어요. 먹으면 안 돼요."

 라면서 우리에게 약간 성난 목소리로 무안을 주고는 가 버립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아이고, 형님들 배가 많이 고프신가 보네요. 그래도 덜 익은 건 드시면 안 되죠. 딱 1분만 더 기다리세요.' 하면 둘 다 기분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니 뭐, 모를 수도 있지. 근데 왜 저렇게 쌀쌀맞지, 장사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겨울이었고, 독감이 대유행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100명이 넘는 환자를 봤습니다. 그 젊은 직원에게서 저의 오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오늘 내 표정도 저랬겠구나. 지치고, 힘들고, 겨우겨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있는 저 직원 같은 모습이었겠구나.'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직전에 일본에 가족 여행을 갔습니다. 하루는 나름 유명한 스시집을 가기로 했습니다. 웨이팅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저녁 8시가 넘어서가면 혹시나 바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리고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희망은 희망일 뿐, 줄 선 사람들이 보입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대기표에 이름을 올립니다. 근처 식당이라도 있으면 먹으려고 둘러보았지만 갈만한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기다리기로 합니다. 식당은 작아서 좌석 테이블 3개에 바 자리가 8개 정도였습니다. 다 앉아야 20명이 정도 될 듯합니다. 저희 가족 앞에는 6팀이나 있었고, 대기 인원을 모두 세어보니 20명이 넘었습니다.

 '테이블이 최소 1번 이상 회전해야 하니까, 40분은 넘게 걸리겠네.'

 배가 고프니, 짜증이 납니다. 괜히 식당을 비난합니다. '아, 좀 크게 하지. 돈을 벌 생각이 없나' '사람들 기다리는데 의자라도 크게 하지'

 9시가 넘어서, 겨우 바에 자리가 났습니다. '한 시간이 기다렸는데, 7살 아이까지 있는데 불편하게 바 자리가 뭐람.' 배가 너무 고파서, 테이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릴 힘도 없어서 그냥 앉기로 했습니다.

 초밥 세트 2개, 라멘 하나, 작은 사시미 하나를 시켰습니다. 그제야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봅니다. 목조건물이네요. 나무 기둥이 낡았으나 윤기는 남아 있습니다. 꽤나 오래된 된 것 같네요. 수수한 인테리어로 유명 맛집 느낌은 안 나고, 동네 식당 같이 소박합니다. 가격도 저렴하네요.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봅니다.  

주방이 오픈되어 있어, 주방장이자 주인장이 초밥을 싸는 모습이 보입니다. 키는 160도 안 되는 작은 몸에, 이마 2cm 위쪽에 둘러쓴 천 모자 아래로 보이는 귀 옆머리는 하얗게 새어있습니다. 주인장 나이가 70은 넘어 보입니다. 코 위쪽에서 입술 양쪽으로 이어진 팔자 주름은 깊고 길게 새겨져 기품이 있습니다. 그 외에 배우자로 보이는 할머니와 30대 초반으로 홀 서빙을 담당한 여자 직원이 전부였습니다.

주인장은 겨우 자신이 누울 정도 되는 공간에서 부지런히 움직여가며 초밥을 쌉니다. 제가 처음 본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2시간 동안 주인장은 단 1초도 쉬지 않았습니다. 대단합니다. '아, 왜 자꾸와. 힘들어 죽겠는데. 제발 그만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텐데 말입니다. 끊임없이 손에 물을 묻히고, 밥알을 움켜쥐고 회를 얹고 손을 수건에 닦기를 반복합니다. 가끔 회를 썰어 나무 접시에 올리기도 했지만, 주로 초밥을 움켜쥐기에 쉴 틈이 없습니다.

 놀라웠습니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지칠 만도, 짜증이 나기도 할 텐데 얼굴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무덤덤했습니다. 초밥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길 때마다 자신의 고유한 리듬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노인장의 노란 소매 끝에서 흥이 묻어납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몸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수천, 수만 번의 동작 끝에서 갈고닦아진 극도로 절제된 하나의 춤이었습니다. 보이기 위한 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오로지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곡이나 오페라와는 다른, 들판에서 추수를 하는 농부들이 이삭을 베면서 부르는 노래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기능적 아름다움" 네, 맞습니다. 딱 그 표현입니다.


 그는 초밥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혼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인을 보면서, 제가 아직 까마득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도  대기 환자가 10명이 넘어가고, 하루 외래 환자가 100명이 넘어가면 환자 말을 중간에 끊기 일쑤고, 표정에서 피곤함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하루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고등학생이 "선생님,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라고 오히려 저를 걱정해 준 적도 있습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고깃집 알바와 일본 스시 장인을 떠올리며 저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뒷이야기: 글을 쓰려고, 그 식당을 검색하다가 그 장인만의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식당은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4시간만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아,,,,,,,,,,,,,,,,,,,,,,,,,,,,,,,,,,,,,,,,,,,,,,,,,,,


 페이스북에 다른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 제한을 하면 예약 대기가 너무 밀린다고 말씀해주셨네요. 제가 생각 못했던 부분입니다;;;;;;;;;;;;;;;;;;;;


<사진을 그 때 찍은게 없어서,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다시 찾을 수가 없네요. 끙. 오키나와 오O세 스시였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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