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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현자 May 17. 2021

38주 임산부가 눈물을 글썽였다.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 잊어야만 하는 기억이 될지도 몰랐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두 손이 덜덜덜 떨렸다. 차가 디젤이거나 오래되어 진동이 심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금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여보, 나 태동이 줄어서 산부인과 병원에 왔어."

 그녀는 38주였다. 이번이 두 번째 출산이었기에 배 속에 들어있는 사내아이가 언제라도 세상을 향해 나올 수 있는 시기였다. 어제만 해도 아이 엄마의 배를 빵 차서, 깜짝 놀란 그녀가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잘 뒹굴던 아이가 태동, 즉 움직임이 감소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녀 또한 의사였기에 태동이 준 것이 무얼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아이가 깊은 잠에 빠졌을 수도 있고, 아이에게 가장 최악의 일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남편은 퇴근하는 길이었고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다.

 남편도 의사인지라, 태동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부는 동갑으로 마흔살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노력한 아이였다. 첫째를 낳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무려 8년 만에 생긴 둘째였다. 남편은 몇 주 전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만삭 사진이 떠올랐다.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 잊어야만 하는 기억이 될지도 몰랐다.

 '침착해. 침착해야만 해.'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남자의 혼잣말은 효과가 없었다. 의사로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수십 차례나 겪은 그였지만, 그런 경험조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첫째 딸은 조용히 혼자 산부인과 대기실에 엄마의 핸드폰을 들고 앉아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아내가 옆구리에 손을 얹고 뒤뚱거리며 천천히 검사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내 눈동자를 보자, 남편 눈도 뜨거워졌다. 

 "괜찮아?"

 남편 주섬주섬 어렵게 말을 꺼내긴 했지만, 이어질 아내의 대답이 두려웠다.

 "보통 NST를 30분 하는데, 30분 더 해서 거의 한 시간 동안 NST를 했어."

 NST는 태아의 심박수를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남자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그렇게 검사를 오래 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는 건데. 설마....'

 아내와 남편은 마주 잡은 손을 꼭 잡고, 담당 의사가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마음속에 품은 말을 꺼냈다가 혹시나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현실이 될까 봐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부는 한 손은 서로 맞잡고, 다른 한 손은 둘째가 들어있는 배를 감싸며 아이가 어제처럼 힘차게 움직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 O선씨."

 진료실에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의사였다. 단발에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목소리나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NST는 괜찮아요. 산모가 태동이 없는 것 같다고 걱정을 하셔서, 일부러 30분 더 하라고 했어요."

 부부는 큰 한숨을 내쉬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단 초음파 보러 들어오세요."

 초음파실은 깜깜했다. 몸이 무거운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겨우 침대에 누웠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의 배에 초음파를 갖다 대자마자 아이의 힘찬 심장소리가 어두운 초음파실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남편과 아내의 얼굴에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부부가 밝은 진료실로 나오자, 산부인과 의사는 그들이 울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산모님, 왜 우세요?  혹시 부부 싸움했어요?"

 "네?"

  산모뿐만 아니라, 남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혹시나 아이가 잘못되었을까 해서요."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대게 산모가 울면 10명 중에 9명은 부부 싸움때문이거든요. 울면서, 아이를 낳아야 되니 마니,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래요."

 "아. 네."

 부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 의사인 부부는 대부분의 산모가 유산이나 배속 아이에게 생긴 문제로 울 거라고 생각했다. 산부인과에서 산모가 우는 가장 흔한 이유가 산모가 아프거나, 아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부부싸움이라니. 단 한 번도 생각 못한 이유였다.  

 눈물을 흘리며 침묵 속에 진료실로 들어갔던 부부는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오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보 산부인과 의사는 진짜 못할 짓이다. 산모에, 애기에, 거기다 부부상담까지 해야 하니...."

 "그러게 말이야. 난 절대 산부인과 의사는 못하겠어."

 그렇게 부부가 울다 웃은 8일 후, 둘째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생 전부터 아빠와 엄마를 울렸던 아이는 앞으로도 무수 부모를 울리고 또 미소 짓게 만들 예정이다.

<나, 예뻐요?>

  


 2021. 5. 11. 09:18분 둘째 아들인 붕붕이 탄생. 많은 축하와 성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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