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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Nov 11. 2023

이제는 영웅이 아니라,  진상이 세상을 바꾼다.

소아 경련 사건의 진실

 “사진 찍어드릴까요?”


 혼자 관광지에 가면, 나는 적극적으로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그것도 먼저 나서서 찍어준다. 가족이나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가 찍어줄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면 나는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찍어준다. 다들 매우 좋아한다.


 나는 외국인이 두리번거릴 때도, “Can I help you?”라며 어설픈 영어를 하며 항상 먼저 다가간다. 20대에는 여행에 미쳐, 필명이 ‘길 위에 쓰러져 죽으리라.’라고 할 정도였다.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추억을 남겼다.


 가족과 한 호텔에 갔을 때였다. 제법 큰 딸은 엄마가 데리고 놀이기구를 타러 갔고, 작은 아들은 내가 맡아서 유아를 위한 놀이터에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로 보이는 보호자가 전화를 했다.


 “여보, 빨리 와 바. 아이가 팔이 빠진 것 같아.”


 나는 가정의학과 의사지만 유난히 응급실 근무가 많았고, 정형외과 파견 근무도 한 적이 있어 아이가 팔이 빠진 정도는 눈 감고도 도수 정복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 도수 정복을 한 것이 대략 7~8년 전이었고, 내 옆에는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두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무엇보다 더욱 우려스러웠던 것은 ‘혹시나’였다.


 팔꿈치 아탈구(pulled elbow)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아이가 달려갈 때, 부모가 아래팔을 잡아채면 아직 관절이 잘 형성되지 않는 아이의 팔빠진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가 팔이 빠진 상황을 잘 모를 때는 안전하게 엑스레이를 찍어서 골절 등이 없는지 확인 후 정복술을 시도한다. 나로서는 1. 혹시나 아이가 골절인데 정복술을 했을 경우와 2. 오랜만에 정복술을 해서 실패할 경우 두 가지가 걱정이었다. 잘 되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겠지만, 잘못되면 괜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아이 팔만 더 아프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한의사 봉침 9억 사건’에서 보듯이 결과가 나쁘면, 괜히 소송에 걸릴 수 있다. 언제, 어디에나 진상이 있다.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7383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아들을 쫓아다니던 나는 결국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다른 아이를 치료하는 사이 아들이 혼자 놀다 다칠 수가 있고, 팔을 다친 아이의 정복술을 시도하다 잘못되어 괜한 소송에 걸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랜다." 속담이 있었다. 실제로 한의사 봉침 환자를 도운 의사는 5년간 소송에 시달린 후에야 겨우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과거와 달리, 수많은 매체들의 발달로 사건과 사고는 이제 널리 퍼져나간다.


https://news.nate.com/view/20231107n19700

 최근에는 자칭 인플루언서라는 이가 응급실에서 자신의 아이가 경련을 하는데 진료를 안 봐준다고 해서 글을 올리고 난리를 쳤다. 알고 보니,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119 대원을 닦달해서 진료하기 힘들다고 미리 이야기한 병원까지 와서 소동을 피운 것이었다. 계속 그 병원을 다녔다는 말과는 다르게, 10년 동안 2번 진료를 본 것이 전부였다. 거기다 병원 당시에는 이미 경련이 끝난 상태로, 항경련제 주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련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소아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료진의 말을 무시한 것을 넘어서, 자신이 “인플루언서인데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SNS에 올려서 너희들(의사들) 다 법적 처벌을 받게 할 거다”라고 협박까지 했다. 뉴스의 저 엠뷸런스 사진도 자칭 인플루언서라는 이가 아이가 아픈 가운데 촬영한 것이다. SNS에 글을 올려 이슈가 된 후, 병원 측의 반박이 나오자 인플루언서는 빛의 속도로 자신이 올린 글을 삭제했다.


 이제는 영웅이 아니라, 진상이 세상을 바꾼다. 한의사 봉침 사건의 유족과 변호사 덕분에 착한 사마리안이 사라졌다. 인플루언서라며 난동과 협박을 한 그녀로 인해 미래의 소아과와 응급의학과를 꿈꾸던 의사들 중 최소 몇 명은 꿈을 접었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삭막해졌고,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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