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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pr 04. 2024

<착각과 최선>

“어, 어, 어.”

 아무 증상 없이 단순히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신 70대 남자 환자를 보자마자,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며, 입에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 밑에 점 이거 언제부터 그랬어요?”

 “저번에 한 번 뺐었는데, 또 생기더니 점점 커져요.”  

 “언제 뺐는데요?”

 “4년 전에요. 피부과 선생님이 피부암이라고 했어요.”

  

?????


 “대학 병원 안 가셨어요?”

 “가라고 했는데, 안 갔어요.”


  ????


 “무조건 가셔야 해요.”

 “안 아픈데요.”

 “점점 커질 거예요.”

 “가면 한 번에 없앨 수 있나요?”

 “노력해 봐야죠.”


<피부 판독 어플>

 사진을 찍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나 암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냥 죽을래요.”

 환자의 팔을 꽉 움켜쥐고는 설명했다.  

 “다들 암에 걸리면 콱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암은 매우 고통스럽고 천천히 진행돼요.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빨리 치료받으세요.”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단순히 안 아프니까, 암이 아닐 거라고, 괜찮다고 여긴다. 또한 삶이 한순간에 전등의 스위치를 내리는 것처럼 쉽게 꺼질 거라 생각한다. 그런 죽음도 있다.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교통사고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망률 1위인 암은 마치 곰팡이가 방 전체를 뒤덮듯 서서히 고통스럽게 퍼져나간다. 암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료니 뭐니 해서 병원 밖으로 나간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나중에 극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응급실로 다시 온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때 치료받을 걸.’


 진료의뢰서를 쓰고, 다시 한번 설득한 후 진료가 끝났다. 결과는 알 수 없다. 4년 전에 피부과 선생님이 조직 검사 후 즉시 치료를 받았을 때와 오늘 내 말을 듣고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았을 때 생존율의 차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가 내 말을 듣고 병원에 갈지 안 갈지도 미지수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사진은 환자의 동의하에 촬영 및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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