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인 파리스 앞에 세 여신이 모였다. 신들의 여왕인 헤라와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였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뽑아달라고 했다.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와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녀를 주겠다고 했다.
젊었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아프로디테는 뇌물로 절세미녀를 선물했다. 문제는 그 미녀가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였다는 것이었다. 파리스의 심판(Paris Judgement)으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파리의 심판, 출처: CNN> 삼천 년 후인, 1976년 5월 24일 따스한 봄날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당대 최고의 와인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미녀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와인을 뽑기 위해서였다. 준비된 화이트 와인은 프랑스산 4종, 미국산 6종에 레드 와인 또한 프랑스산 4종, 미국산 6종이었다. 어차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와인이 1등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와인 vs 미국 와인 대결이었지만, 점수를 매기는 사람 9명 모두 프랑스 사람인 데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 열렸기에 홈팀인 프랑스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었다.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모두 1등은 프랑스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와인이 2등이라도 할 수 있을지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1등을 차지한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와인 하면, 프랑스이다. 다만 테스트는 모두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어떤 나라의 어떤 술인지 알 수 없었다.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먼저 시작한 화이트 와인에서는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가 레드 와인에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가 1등을 차지했다. 모두 미국산이었다.
삼천 년 전의 ‘파리스의 심판’에 이은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었다.
이 파리의 심판에 대해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프랑스 와인이 우월하다는 신화를 깨고 와인 세계의 민주화를 이뤄낸, 와인 역사상 중대한 분기점이다.”이라고 했다.
프랑스 와인이 최고라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믿음과 신념, 더 나아가 신화와 미신에 가까웠던 것이다. 삼천 년 전, ‘파리스의 심판(Paris Judgement)’이 신화의 세계를 열었다면, 1976년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은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각자 심사위원이 되어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을 내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