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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Oct 26. 2024

마약, 인물, 행복에 대하여

친구와 연인, 그리고 무시무시한 그것


남자 1. 


 어머니는 대학교 여왕이었고, 아버지는 가수였다. 집은 부유했기에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열네 살 때, 테니스 전국 순위권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운동도 잘해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테니스 선수를 꿈꾸었지만, 좌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연예계로 발을 돌렸고, 부모가 물려준 훌륭한 외모와 목소리를 덕분에 쉽게 일주일에 5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1994년 최고의 드라마에 마지막으로 캐스팅되었다. 겨우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드라마 편당 100만 달러(10억)를 받았으며, 드라마로 번 돈은 3,000만 달러(300억)이었다. 그는 줄리아 로버츠의 남자친구가 되었고, 2000년 초 드라마와 동시에 영화에서 1위를 찍었다. 



 이천만 달러(200억) 짜리 펜트 하우스에 살며, 마음만 먹으면 LA의 그 어느 여자와도 잘 수 있는 남자가 바로 그였다. 


남자 2. 


 생후 9개월에 그는 엄마와 함께 아빠에게 버림받았다. 어린 그는 아빠가 그랬듯,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늘 두려워했다. 엄마는 재혼하여, 의붓동생을 낳았지만 그는 늘 소외감을 느꼈다. 열다섯 살에, 그는 14년 전 아빠처럼 엄마를 버리고, 이번에는 아빠에게 갔다. 


 그는 누구와도 연인이 될 수 없었다. 버려진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야 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이 늘 부족한 사람이고, 계속 만나다가는 그 사실을 다른 이에게 들킬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새 차를 사도, 겨우 오일 정도밖에 가지 않았다. 성인이 된 그는 자서전 제목을 <아직도 소년>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소년이 아니라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에 불과했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Abandoned(버려지다)”였다. 끝내 그는 결혼하지 못했다. 


 남자 3. 


 부모는 잠투정을 하는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신경 안정제인 바비튜에이트를 먹였다. 196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그는 열 네 살에 술을 마셨다.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 모든 문제가 사라졌고, 부모의 관심도 필요 없었다. 술이 보살펴줬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그러다 늘 술에 취했다.


 20대 후반 제트 스키를 타다가 부상을 입었다. 의사가 준 마약성 진통제는 열네 살 처음 마실 술과 같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는 신과 악수했다. 일 년 반이 지나자, 그 알약을 하루에 무려 55알을 먹고 있었다. 


 서른 살에는 술로 인한 췌장염에 걸렸고, 술과 마약, 신경 안정제에 찌들어 살았다. 심지어 마약 중독으로 인한 심한 변비로 장이 터진 데다 구토물이 폐로 들어가 폐와 장이 망가지는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그가 살 확률이 2%라고 했지만, 운 좋게 살아났고, 무려 5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26살부터 육십 다섯 번 넘게 해독 치료를 받으며 수백만 달러를 썼다. 마약을 끊으려 할 때, 그는 발가벗은 채로 고통에 겨워 코요테들한테 갈라리 찢기는 개처럼 울부짖었으며, 해독 치료를 지옥이라고 말했다. 


 세 남자는 같은 남자다. 미국의 유명 시트콤 <프렌즈>의 챈들러 역의 매튜 페리가 쓴 자서전 <친구와 연인, 그리고 무시무시한 그것> 내용이다.   


그는 끝부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처절하게 싸워 전쟁에서 승리했다. 


“기적을 믿으십니까? 이게 바로 기적이죠!!!!!” 


 책이 나온 지 일 년 후인 2023년 10월 28일, 만 54세의 나이로 그는 사망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싸워 이겼으며, 이걸 기적이라고 했던 그는 결국 다시 마약에 손댔다. 그는 


 “케타민이 몸속으로 흘러드는 순간에 중요한 것은 나의 자아, 그리고 그 자아의 죽음뿐이다. 그런 순간에는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라고 했는데, 결국 케타민을 하다 죽었다.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이 책은 마약과 인물에 대해 썼지만, 근본적으로는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인기, 돈, 여자, 술, 마약이 자신의 구멍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속 구멍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 사는 괴물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고, 딱 한 잔, 딱 한 알만 삼키라고 그를 유혹했다. 그런 다음 괴물은 그를 집어삼켰다.”


 그의 머릿속에 사는 괴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이 책을 덮은 지금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병원에 출근하니,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책 한 권이 도착해 있었다. 책을 뜯자, 나는 놀라고 말았다. 작년에 이미 원서로 읽은 <친구와 연인, 그리고 무시무시한 그것>의 한글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출판사가 알고, 나에게 책을 보내준 것이었다. 복복서가 출판사에게 감사드린다. 한편으로는 짜증이 몰려왔다. 낼 꺼면 빨리 내지, 부족한 실력에 영어 원서를 읽는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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