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리뷰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쓴 책이다. 2023년 9월 1일 대법원은 가해자에게 살인 및 강간 미수로 20년 형을 확정지었다. 전반적인 리뷰는 생략하고 의사로서 아쉬웠던 점만 써 본다.
내가 3년간 수련을 받았던 강남세브란스 병원에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환자가 실려온다.
20대 여자, 새벽에 의식 잃은 채 길거리에 쓰러진 채,
112 또는 119 신고로 내원
우리나라 최고의 유흥가인 강남역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 강남세브란스 병원이기에 일단 의식 잃은 환자는 모두 강남세브란스로 왔다. 그리고 차트에는 항상 빨간색으로 “성폭행 가능성 배재할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성폭행 키트”라고 있다. 성폭행 의심 환자가 병원으로 오면, 의사는 반드시 경찰(여경)의 동행하에 증거를 모은다. 빗으로 체모를 모으는 것부터, 면봉으로 구강, 항문, 생식기 등에 채액을 체취하는 등 굳이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어도 의사라면 설명서를 보고 따라하면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나 또한 산부인과 파견 근무가 있어서 교육을 받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매우 불편한 검사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피해자의 상의가 가슴 밑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였고, 바지는 지퍼가 절반 이상 내려간 상태로 바깥쪽으로 접혀 있었다고 했”고, 목격자 또한 “체모가 보였다”고 했지만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성폭행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의료진에게도 전달이 안 된 듯, 의사도 머리와 얼굴의 부분의 외상과 다리 마비에만 관심을 가졌기에 성폭행 유무를 입증할 수 없었다. 결국 나중에 “피해자의 청바지 안쪽과 허벅지 부위에서만 검출된 가해자의 Y 염색체”로 강간미수만 인정되었다.
경찰도 소방도 의사도 모두 놓쳐서 진실 하나를 밝히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마약 관련 범죄도 늘고 있어, 의식 저하 환자에게서는 마약 검사 또한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