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특징 없는 50대 여자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환자였다. 강점숙 씨(가명)는 술, 담배도 안 하고, 적당히 운동도 하기에 별 달리 할 말이 없는 환자였다. 환자가 올 때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는 환자의 이전 결과들을 살펴본다. 근무하는 곳이 종합병원이기에 다양한 과에서 진료를 본 기록이 있어, 환자를 좀 더 상세히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강점숙 씨(가명)는 2년 전, 건강검진을 한 적이 있었다.
‘뭐 특별한 것 없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결과를 확인한 나는 몸에 전율이 일었다. 간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AST: 118(정상은 40 이하)
ALT: 198(정상은 35 이하)
rGTP: 1981(정상은 여자 35 이하)
공복 혈당: 135(126이상 당뇨)
술도 안 먹고, 체중도 정상인 50대 여자가 간 수치가 높으면 1. 약 2. A, B, C형 간염 3. 간 및 담도, 췌장쪽 이상 등 이었다.
의사로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2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환자분, 2년 전에 검사 했을 때 이상 있다는 말 없던가요?”
“이상 있다고는 하는데, 아프지 않아서 따로 병원을 안 갔어요.”
“최근 살 빠지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이런 증상 없어요?”
“괜찮아요.”
“검사 수치가 정상의 4배, 심지어 60배 가까이 높았어요. 무조건 정밀 검사 하셔야 합니다.”
“지금 바빠서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이렇게 말하는 환자의 다수가 대부분 병원에 다시 안 간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환자분이 제 가족이라면, 전 어떻게 해서든 추가 혈액 검사와 함께 복부 초음파나 CT를 했을 겁니다. 혈액 검사가 정상보다 몇 배나 높다니까요. 이건 정상이 아니에요. 무조건 검사 하셔야 합니다.”
“알아서 제가 병원에 갈께요.”
강정숙 씨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은 침묵의 장기다.
“환자분, 간은 한 개인데 아들이 아빠한테 이식하죠?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아들이 아빠에게 40%를 줍니다. 40%만 있어도 멀쩡한 거죠. 반대로 말하면, 60%가 망가져도 전혀 증상이 없어요. 증상이 나타나면 늦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정밀 검사를 하셔야 해요.”
환자분은 진지하고 걱정스런 나와는 반대로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쁜 소식을 접할 때, 아니라고 믿고 싶고,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부정과 분노다.
제가 알아서 병원에 갈께요.
환자가 다녀간 날,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간담도 수치는 더 상승했고, 공복혈당도 올랐다. 간, 담도, 췌장 질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는 전화를 했지만, 환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검사 결과가 2년 전에 비해 더 나빠졌으며, 꼭 금식으로 내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문자를 남겼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의사로 일 년에 만 명이 넘는 환자를 만난다.
“선생님, 제가 호르몬(탈모) 치료를 받아야할까요?”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의사인 나는 치료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하고, 선택은 환자가 하도록 한다. 환자라기보다는 고객에 가깝고, 나는 의사라기보다 조언자로 수평적 관계다. 하지만 심각한 외상이나 질환의 경우는 다르다. 환자나 보호자는 일생에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잘 모를 뿐 아니라 당황스럽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럴 때는 의사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여 동의를 구해야지, 환자에게 선택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진지하게 설득을 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대부분 따라온다. 하지만 아무리 설득을 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달만 해도, 정상이 12인 헤모글로빈 수치가 6으로 심각한 빈혈인데도 빈혈 검사는커녕 오히려 다이어트약을 먹는 40대 환자가 왔다. 나는 빈혈에 대한 정밀 검사와 함께 다이어트약을 중단해야 함을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둘 다 실패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입원을 시켜 빈혈 검사를 하고 다이어트약을 끊도록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의사인 나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실제로 나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50대 정상훈 씨(가명)가 1년 전부터 금연을 한다고 했다. 50대에 금연을 하는 계기는 대부분 친한 누군가가 암이나 뇌혈관 질환에 걸리거나, 자신이 걸리는 경우다. 이에 금연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선생님께서 1년 전에 진지하게 금연하라고 하셔서 했다고 하셨다.
사실 난 정상훈 씨에게 금연을 권고한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모두 금연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금연을 통해 건강해졌고, 나는 금연한 환자 덕분에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