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언제든 겪을 수 있다.
[서문] 글을 쓴다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내 글을 내놓는다는 것이지. 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나를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Where is my DVD?, 2013)에서 '그 영화 하나로 나 판단하지 마-'라는 말을 한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아마 나를 대변한다면 왜 글을 쉽게 발행하지 못하는가? 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는 판단을 멈춰야 한다. 어떤 주장과 취향은 우리(나)를 대변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판단을 멈춰야 한다. 취향과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을 내비친다는 것은 큰 용기인 것이다.
누군가의 용기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 어른들은 정적이 많고 어색함이 그리도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잘난 채를 한 것이지.)
처음 입사한 회사에 이야기가 끊김의 서먹함과 어떤 질문도 서로 먼저는 하지 않으려고 하며
사적인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
친한 것 같지만 아주 두꺼운 벽이 있는 것 같고,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이도 보이는 그 모습들이 참 이상했다.
그리고 오늘 일로만난사이 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첫 화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과 게스트가 '일'적으로 만나서 함께 일을 하고
그 사이에 간간히 토크를 진행하는 형식의 토크 프로그램이다. (JTBC. 2019))
유재석과 이효리가 일로 만난 사이라는 것이다.
둘은 참 친한 사이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일로만 만나는 사이가 될 수 있구나
이제는 공감이 크게 되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인간관계에서 누구를 뒷담 화하거나 이런 '휘발성' 공동 분모로
서로의 많은 것을 터놓는 것을 꺼리는 것을 조금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더 어린 학생 때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서로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때가 많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쉽게 하던 비판을 그쳤고 나름 성숙한 사람 관계의 선을 지킨다고 생각했지.
어릴 때는 공통분모라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참 많은 것에서부터 말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정해져 있었다. '회사'.
사람대 사람이 아녔다.
약 18개월 전 왜 이렇게 정적이 많은 거야, 하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호기심이 많은
24살에 다시 어린아이가 된 신입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