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타고 전환의 시대로
한동안 잠잠하던 코로나 사태가 갑자기 심각해졌다. 아침엔 80명을 넘고, 오후엔 100명을 넘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블루일베엔 하루종일 지역과 종교에 관한 혐오발언이 판을 친다. 작은 일에 핏대를 세우는 나는 오히려 심각하고 위중한 사항엔 좀 무심한 편이다. 남자친구는 정반대의 우선순위를 가져서 우린 요새 별 대화가 없다. 공공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순간 순간 하기도 하지만.. 역시 재미가 없다. (!!미쳤나) 그런 생각은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팍팍해졌는지를. 거리마다 텅 빈 식당들, 굳게 다문 입보다 한층 더 무거운 마스크로 가린 얼굴들, 헛기침이라도 할라치면 쏟아지는 시선들, 아이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고,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가지 못한채 창밖을 바라보며 논다. 버스에서 중국어라도 들리면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소시오패스같은 말일수도 있으나 이런 전 지구적 위기가 닥칠 때 나는 한편으로는 무심해지고 한편으로는 희망적이 된다. 음 쓰고나니 더 소시오패스같다.
우선 내 개인적인 인생관과 삶의 철학이 좀 그렇다. 어릴때부터 엽기적이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 인생관의 기본적인 관념은 이 세계가, 내 인생이 이미 저승에 와 있다는 생각이다. 어릴땐 좀 더 순한 언어로 표현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게 잘 안된다(귀찮). 종교들의 탄생 비화는 뭔가 아름다운 곳에서 인간이 죄를 짓고 업보를 다하기 위해 인세에 내려오는 류이다보니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것이다. 말이 되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승이라는 곳이 이렇게 끔찍하고, 불완전한 곳일 수 있나? 저승이라고 생각하면 편안해진다.
나는 업보의 크기가 수명이라고 생각한다. 명분상의 업보를 사함이 필요한 이들은 신생아로 잠시 살다가 가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장수한다고 생각한다. 어짜피 인간은 자기의 괴로움이 절대값이므로, 서로 누가 더 괴로운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평균수명이라는 건 그래서 존재하는데, 착하게 산 사람과 보통 사람과 악하게 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요절, 평균수명, 장수. (장수하신 분들 죄송해요...) 여기서 무엇을 착함으로 이야기하고 악함으로 이야기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있다. 여기선 설명하지 않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한다. 인류가 몇천년의 시간동안 오래살고 싶어서 연구하고 개발한 모든 일들은, 동물에게든 식물에게든 인간에게든 주로 피해를 끼치고 괴롭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난 좋은일과 슬픈일,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주변인과 온도차이가 좀 있다. 예를 들어 나쁜일이 생기면 “흑 짜증나, 그래도 수명은 줄었겠지” 같은 리액션이 가능한데, 이제는 공격이 너무 피곤해서 속으로만 한다. (참고로 인생의 모든 긍정과 부정은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고 생각해서 기쁜일이 있어도 아주 기뻐하지는 않는다. .... 그만큼 나쁜일 겪어야해...)
예전에 노회찬이 죽었을 때 그의 인생을 내가 멋지게 여겨 역시 멋진 사람은 일찍 죽는다. 이놈의 이승 탈출한 것 축하하오. 잘 사시오. 하고 블루일베에 썼다가 좌표찍혔던 에피도 있다.... 그 이후론 말을 아낀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다. 이 말은 내가 코로나사태에 희망을 거는 것보다 더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이승에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감정적이지 않은 배경을 이야기했다. 그런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전지구적위기는 아주 자주, 많이, 크게 개별 인생에 지구적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예를들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핵과 지구적관점으로 활동하고 삶의 양식을 바꾼 일본인들이 대대적으로 늘어난 것 처럼.
포항에서 계속되는 지진이나, 피부에 와닿는 기후변화, 인간의 힘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재앙들을 마주하면 왜 그리 정치인들이 노인과 보수층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북한 북한 거리는 지 알것 같다. 왜 그렇게 북한이 미사일을 쏴대는지도 알것같다. 전 지구적 위기는 인간들에게 전환점을 주는 것처럼, 전 지구적 위기에 걸맞는 위기와 두려움을 특정인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게 먹히는 전략이다.
무력감과 비통함을 느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견뎌내기 위해 뭔가를 필요로한다. 과거엔 그럴때 종교가 역할을 한 것 같다. 지금은 종교의 영향력이 좀 줄어들었는데, 그 자리를 대안적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일,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의심하고 고민하는 일이 차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위기 이후에 갑작스레 늘어나고 증가한다.
나의 결론은 이럴때 더 열심히 사는 거다. 비건지향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고, 구술생애를 기록하고, 공공사업 안에 민주주의와 공개성에 기반한 틈을 만들고 벌리고 무엇이 나은, 좋은 사회냐, 삶이냐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것.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한다. 그래야 계획보다 빨리 이승탈출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