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by 초래

24절기를 좋아한다. 오늘은 우수다. 우수에는 해물포차를 가야하는데, 하고 생각한다. 나의 24절기 풍습 중에 하나다. 24절기는 나의 오래된 취미생활이기도 하다. 처음의 시작은 '입동전엔 검스 안신어', '대설 전엔 패딩 안입어' 같은 젊은 패기였다. 우습지만 지금도 유효한 나의 풍습이다. 이상하게 나의 24절기 풍습은 쌀쌀해질 무렵부터 초봄에 걸쳐 구체적이고 그 외의 시간은 대충대충이다. 아마 찬 바람 불 때부터 나의 달력을 꽉 채우는 제철해산물들 때문인 것 같다. 몇번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술꾼 도시처녀 한국인의 24절기 풍습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곤 한다. 어쩌면 길고 지겨운 겨울을 나는 유희였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올해는 시작도 안했다. 는걸 방금 알게되었다. 늙은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 들은 건진 모르겠는데 "계절이 바뀌는 건, 그렇게라도 설레라고 그러는 거래. 늙으면 설렐일이 없잖아." 하는 말을 듣고선 계절 챙기기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데 계절에도 안설레는건가 지금.... 하며 잠시 멍때린다.


무슨무슨 날이니 하는 것 챙기는 걸 좋아하고, 또 계절이 지나면 그에 따라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며 먹을거리가 변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24절기에 맞추어서 제철안주를 챙겨먹는 것, 거기에 현대인의 여러 밈들을 붙이는 일은 언젠가는 꼭 완결을 짓고 싶은 그런 놀이다.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예를 들어 입춘은 양장피에 빼갈을 마시는 날이다. 근거가 하나도 없이 뭔가를 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한해의 시작이 되는 입춘에는 겨자채, 파채 등의 오신채를 섞어 수라에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알싸한 자극이 있는 식물들의 새순을 무쳐서 뭐 긴 겨울 끝의 신진대사도 강화하고, 입맛도 돌게했다나 뭐라나?


우수의 해물포차는 그때쯤 되면 날이 좀 풀리고, 봄비나 봄눈이 내리는 습기찬 날들이 이어져서 아 이러다가 조만한 해물시즌 끝나겠는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서 허리띠를 풀고 해물을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 저것을 정한 절기는 입동부터 우수까지인 듯 한데,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제일 재밌어하는 계절이 겨울이 된 것 같다. 모두 귀여운 24절기 덕분이다.


계절의 변화를 보는 일은 너무나 아름답고 즐겁다. 계절이 없어지니, 뭐니 말들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계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채로 편리하게 말한다. 자기가 원하는 날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멀쩡한 봄/가을이 없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발끈하며, 봄은 조금 추울때부터 조금 더울때까지의 계절이에요. 긴팔을 입고도 땀이 안나고 햇살이 좋은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하고 얘기해서 쓸데없이 봄선비가 되고 만다.


이제 겨울의 절기를 나는 일은 조금 익숙해진 것 같으니, 올해는 본격적으로 봄의 절기를 집중해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선 경칩은 개강파티의 계절이라 매년 삼겹살을 먹어왔는데, 이젠 비건지향의 삶을 살고 있으니 다른 풍습을 만들어볼까? 생각한다. 음.. 그리고 춘분은 내 전공인 이란 등지의 페르시아문화권에서 '새해의 첫날'이라는 노루즈라는 명절이다. 학교다닐 땐 춘분에 이란의 새해상을 차리고, 사과를 먹고, 장작을 뛰어넘곤 했는데 완연한 봄의 시작이라는 춘분에 현대인의 풍습으로는 무엇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 청명-한식은 예로부터 피크닉의 절기였다. 진달래화전을 만들어 산으로들로 나들이를가는 절기인데, 사실 이때는 항상 큰 봄비가 내려 그나마 일찍 핀 남도의 벚꽃들도 다 축축 쳐지고 땅으로 떨어지곤 한다. 흠. 그리고 4월엔 곡우도 있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고, 따뜻한 비가 내리는 날을 떠올렸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지. 입하에 나는 한해 첫 물냉면을 먹는다. (5월 5일경) 새해 첫날부터 입하까지는 아무리 냉면이 먹고 싶어도 참는 편이다. 이건 그대로 하고, 선주후면의 예의를 지키기로한다. 소만은? 소만엔 뭘하지? 뷰티풀민트라이프 가야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올해는 늦지 않게 고민해서 꼭 제철야채꾸러미 신청해보기로 다짐한다. 꼭꼭.


오늘은 아무래도 해물포차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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