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대참치

by 초래

남자친구가 방어, 연어, 참치 등의 기름진 생선을 즐겨먹기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았다. 그동안 이 맛을 모르고 살았다는게 아쉬워라는 말을 연어를 먹을때마다 한다던지, 뭘 먹자, 뭘 하자 소리를 원채 안하는 사람인데 코끝에 찬바람이 느껴질락말락한 징조라도 오면 오 곧 대방어의 시즌~~ 이러면서 설레어하곤 한다. ;; 몇달전부터는 진짜 완전 레알 참치전문점에서 먹는 참치는 무슨맛일까 그런덴 얼말까 비쌀까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내심 아 발렌타인데이엔 초콜렛 말고 참치를 입에 넣으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참치전문 오마카세라는 집을 찾아서 예약을 했는데 참치 전문점 (사조참치, 이춘복참치 등)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매우 고급스러웠고, 숨겨진 위스키바를 찾아가는 느낌이어서 기대가 됐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모든것의 결론을 내리고 이 이야기를 적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제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배가 너무 아팠다. 뭘 잘못먹어서 가는 화장실도 있고, 어딘가 고여 풀리지 않는 고통을 해소하는 복통도 있고 복통의 종류도 여러가지지만 어제는 정말 '내가 비건위크 중에 갑자기 기름진 걸 먹어서 배가 아프나' 싶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의 아픔이었다. 그렇다고 처음은 아니고, 나는 어떤 불편한 공기때문에 그 맛있는 걸 먹고 아랫배로 체한 것이다....... 흑흑.. 왠만큼 체한건 그냥 참아서 내릴 정도로 강인한 내장멘탈을 가진 나인데!


이 이야기를 하려면 재작년 파리 미슐랭레스토랑 방문기를 잠깐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나는 2017년에 갑자기 파인다이닝에 눈을 떴다. "먹을걸 너무 좋아하는데, 먹을게 없어" 는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때 음식을 섭취하는데 좀 매너리즘이 ;;;; 왔다. 그렇다고 맛이 없거나 안먹는 건 아닌데, 먹고 싶은게 당췌 떠오르지 않는 시기가 좀 귀찮고 괴롭기도 했다. 그러다 만난 파인다이닝에서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이후론 파인다이닝을 위해 평소에 대충먹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유럽여행 중에도 내가 파리까지 갔으니 파리 미슐랭 하나는 방문해야지! 생각했고, 고르고 골라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성비 좋은 하나의 레스토랑을 픽해서 예약을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다. 오랜세월 이 공간과 함께 커리어를 쌓아온듯한 품격이 서버와 소믈리에들에게도 넘쳐났다. 이런 저런 메뉴를 시키고 파리까지 왔는데 기분이다! 라며 샴페인도 시키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와서는 그날 일기에 그런 말을 썼다. '파리에서 미슐랭급의 파인다이닝은, 남자가 호스트가 되어 내가 따라왔어야 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라고. 여자들끼리의 테이블은 아예 없었고, 남자들끼리의 테이블은 오히려 있었으며 남녀가 섞여있는 테이블은 드문드문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좀 귀중한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는데 그건 존중이라기보다는 돈많은 중극 어떤 부자 아버지의 철없는 딸;;; 을 귀중히 서빙하는 느낌이랄까 이 애매한 마음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네...;


실제로 그곳의 파인다이닝문화가 어떨지는 내가 모를 일이지만, 그날의 낯선 불쾌함은 인종차별이나 이런 것들과는 좀 달랐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여자주인공이 프랑스인 남자에게 리드당하며, 자길 그렇게 리드하지 못하고 순해빠져서 공상이나 꿈꾸는 미국인 남자친구를 업신여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 공간이 그런 구도의 손님들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도쿄나 한국에서도 미슐랭 파인다이닝을 가봤지만 그곳들은 오히려 맛에 엄청 집중한 새롭고 쿨한 공간처럼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역사가 깊고 클래식한 곳을 선택했던게 그런 결과를 불러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마담과 마드무아젤들은 그런데 혼자 가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배가 아팠다... !!


어제 그 요릿집은 아주 좁고 긴 공간이었다. 다찌로만 이루어져있고, 총 9석. 마스터와 친말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참치를 즐기겠군! 하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는 긴장을 하면 장이 꼬이는 타입이라, 뭘 먹으러가면 내가 리드하는 편이다. 술은 남자친구가 사기로 해서 한참을 보는데, 남자친구가 '너 먹고 싶은 걸로 골라' 해서 술을 골랐다. 마스터는 나의 안목을 비지니스적으로 칭찬했고, 술을 한잔 따라주겠다며 술병을 들었는데 남자친구가 손짓으로 나를 먼저 따라주라고 하여 1차당황하며 내가 술을 받았다. 한참 먹다가 다진 참치를 눈 앞에서 계란노른자와 비벼 김에 올려주는 퍼포먼스를 가진 음식이 나왔는데 그 음식이 나왔을 땐 큼지막하게 만든 마끼를 내쪽으로 밀길래 아 오늘의 주인공인 남자친구부터 주세요! 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2차 당황! 술은 남자부터 음식은 여자부터라는 공식이 있었던걸까? 그걸 쥐어주고 나서 "생일이에요?, 오늘의 주인공이에요?" 하고 묻는다. 남자친구가 참치를 좋아해서, 제가 발렌타인 선물로 데리고 왔어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서 오늘 이 곳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데려오고, 자리를 리드하는 사람이 나였다는게 공식화되었다.


그러고나서 식사를 하는 내내 나는 혼자 조금 불편했다. 물론 눈치없는 옆사람은 내가 불편한지도 몰랐지만, 나는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맛있게 먹고 나와서 생각해보니, 파리에서 그 레스토랑에 갔을때의 그 느낌같았다. 맥주를 한잔 마시러 가서, 나 아까 사실 좀 불편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꺼내며 정리한 불편의 원인은, 그 마스터가 나를 그 다이닝의 호스트로 접객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라는 거였다. 손님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내며 식사자리를 이어가야하는데 주로 그런 곳의 손님은 아마도 그 마스터에게는 쭉- 나이가 좀 있는 남자가, 내가 널 아주 생각하고 있어! 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게스트를 데려오는 구도! 마스터는 호스트인 나에게 어떤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나에게 거의 말을하지 못했는데, 또 남자친구에게도 몇마디 건내긴 했지만(?) 그게 이어지지는 않는? 그런 분위기가 식사 내내 이어졌던 것...! 아 너무 불편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생각해보니 참치 오마카세 집 자체가, 아니 참치 자체가 엄청 남성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인 것 같아. 라는 남자친구의 대답. 사조 참치, 이춘복 참치의 넓은 홀을 가득 채운 검은 양복의 무리를 상상하며 ... 그러게? 이제껏 참치사줄게! 라는 성공의 증표같은 말을 여자선배에게 들어본적이 있던가? 하는 생경한 느낌. 게다가 어제 우리가 식사를 할 때 그 공간에 여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는 걸 나와서야 깨달았다. 나머지 세 무리 역시, 여길 먼저 와본 한명의 남자가, 나머지 무리를 초대하여 대접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것을..


내가 성공을 해서 참치사줄께! 라는 말을 하는 걸 상상해본다. 혹은 내가 아끼는 여자후배를 독려하고자 참치를 사주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영 아니다. 내 남자친구의 경우 정말 극진히 대접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곳을 다시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여기에 재방문한 나를 상상하는 것은 영 익숙하게 그려지지가 않았다. 어 그러고보니 성공한 사람의 취향, 성공한 사람의 한잔, 성공한 사람의 한턱 같은 밈(?)들은 모두 성공한 중년남성을 기본값으로 하고 있다는게 떠올랐다. 그런 걸 대대적으로 보여준 이번 그랜져의 광고나, 발렌타인이나 기네스가 정우성을 모델로 삼은 것... 그리고 참치까지! (통조림 제외) 성공한 여자 어디 나오지.. 음 역시 타이레놀인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있긴 하겠지;) 또 참치에 반해 뭔가 연어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회... (물고기?) 같은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연어회를 전면에 내세운 공간들이 어떤 모습인가 슥 살펴보니 성공한 선배가 아끼는 후배 먹이러 갈 곳은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성공한 여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취향과 구매력이 있는 여성에게 비지스적인 목적을 겸사겸사 가지고, 호스트로서 선택할만한 공간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보면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런 타겟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선택할만한 공간들은 비지니스적인 연출이나 목적이랑은 영 거리가 있는 데이트 장소로서의 로맨틱함이 강조되어있는 공간들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한다. 어제의 시작은 발렌타인데이 데이트였지만, 결론은 할일이 너무 많다로 끝나버렸다. 지금이야 뭐 나한테 그런게 필요하지 않지만, 만에하나 설마설마 내가 성공이라도 한다면.. 성공을 했는데 남성들이 그동안 만들어놓은 비지니스문화 바깥에서 비지니스를 키우고 확장하고 거래를 확정하고자 한다면 그럴만한 공간부터 샅샅히 찾고 만들어야 한다니. 어휴 정말 지금 이 사회 너무 후지다. 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예민하긴 한가보다." 하고 피식 웃었다. 왠만한 상황을 다 견디는 나의 내장조차 어제의 그 상황을 견디질 못했다니 수고했어 내 대장아 미안해~ 하면서. 역시, 세상에 할일이 너무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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