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음악, 꾸준히 읽어 내린 한 장의 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일'이지 싶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일이다. 비록 내가 음악을 만들 수는 없지만, 절대 음감 같은 것을 갖지도 못했지만, 두 귀로 담아서 잘 포개어 두는 일은 해낼 수 있다. 아주 성심성의껏 해낼 수 있다.
아마도 내가 더 이상 책을 많이 읽지 않게 되었을 무렵인 것 같다. 내가 음악을 듣는 일을 이리도 좋아하게 된 것은. 하얀 종이에 빼곡히 박힌 활자들은 언제나 나를 황홀하거나 놀랍거나 충격적이거나 평이한 세상으로 데려다주곤 했다. 나는 그 글자들과의 여행을 즐겼고 등장인물들의 삶에 흠뻑 빠져 함께 허우적거렸다. 그런 시간들이 나름대로의 '평범하고 드라마 없는' 나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나름대로의 활력을 주었다. 새로운 세상을 엿보는 데에, 나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세상은 그 하얀 종이들의 세상만큼이나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이렇다 할 끔찍한 사건이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으는 아찔함 따위는 없었지만, 평이한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버거운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그릇이 있듯이, 그중 '나의 그릇'은 나의 세상을 담기에도 이미 꽉 채워져 가끔은 그 외벽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고 또다시 글자들과의 여행을 떠나기에는 그 출렁이는 내용물이 무거웠다. 팔꿈치가 아파올 만큼, 눈이 뻐근할 만큼 코를 박고 책을 읽는 일은 어느새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내 귀에 들리는 수많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는, 박아 넣은 코로 계속해서 빳빳하거나 흐물거리는 책장의 냄새를 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내 귓등 즈음을 툭툭 치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그릇이 크고 작게 달그락 거릴 때에 만난 음악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달그락 거리던 이십 대의 음악들이 더 많았다. 같이 살던 사촌 언니는 그 시절의 내게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던 인디 뮤지션의 음악들을 자주 틀어놓곤 했고 그 감성적이고 유쾌하고 때로는 찌질한(?) 음악들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시와도 같았다. 수필과도 같았다. 더 이상 책을 많이 읽지 않던 나는 음악을 통해 많은 시인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과 생각과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고 책을 읽어내는 것 대신에 음악을 들어내었다.
그러다 오래 묵혀내고 나면 손때가 까맣게 타 누렇게 물든 쾌쾌한 헌 책의 냄새가 났다. 그에 담긴 어쩌면 빳빳했고 어쩌면 쾌쾌했던 '나'들의 냄새가 났다.
그동안 음악을 많이 읽었고 청후감도 많이 작성했다. 멜로디보단 가사가 좋았고, 그저 그렇던 멜로디의 노래도 가사를 곱씹으며 듣고 듣고 또 듣다 보면 마음속에 쾅 찍혀나와 입으로 흥얼거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는 가사가 없는 노래도 좋았다. 멜로디만 있는 음악들도 그를 만들어내는 악기들의 활자 없는 가사들이 좋았다. 그렇게 피아노, 기타, 드럼, 하프의 이야기들도 읽었다. 때로는 기계들의 이야기들도 읽었다.
이젠 뭐 별다를 음악적 취향이랄 것도 없다. 그저 섞이고 섞여 갈수록 괴상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스쳐간 모든 음악들의 냄새는 다시 마주할 때마다 나의 코를 익숙하게 간질였고, 나는 그와 함께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유쾌하거나 때로는 한없이 찌질해진다. 어쩌면 진짜 별것도 아닌 취미일지도 모른다. '음악 듣는 걸 누가 싫어해? 다 좋아하는 일이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름대로 평범하고 드라마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한 어느새 책장에 코를 박고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려운,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그렇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일'이지 싶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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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말했다. '나에게 여행은 떠남이고 음악은 떠나지 못함'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계속이고 며칠을 곱씹다가 오늘은 10cm의 노래를 들었다. 그 음악 안에서 나는 여전히 '떠나지 않았음'을 느꼈다(못함이 아닌 '않음'이다). 음악을 통해 나는 떠나지 않는다. 계속이고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다. 지나쳤으나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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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미니콘서트. 2013
음악이 나에게 온전히 무슨 의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 곱씹어야겠다.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