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sorim Jul 05. 2016

에필로그.

_이제는 안아 덮은 것을 내려놓을 시기.



어느새 칠월이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해 '오늘도 나는 여행을 안아 덮는다'라는 매거진을 처음 발행한 것은 이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공교롭게도 오늘 역시 겨울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곳에서는.


무겁고 기다란 롱코트는 겨울을 말한다.

.

매거진을 접어내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여행을 그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온전히 여행에 질려버려 '혹시나 집에 들락거릴 바퀴벌레나 쥐 따위를 생각할 때'와 같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내젓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여행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오래된 여행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안아 덮고 누울 오늘의 여행이 있었고 오늘의 장소가 바로 내가 애틋하게 그리던 바로 '그 장소'였기 때문에 나는 오늘에 충실해야 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이다. 요 며칠 나는 다시는 마주하지 않으리라 믿던 얼굴들을 마주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 믿던 장소들에 실재했다. 의외로 별다를 것은 없었다. 모든 것들은 이전과 같았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랬던 것과 같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엉키거나 서로의 시간을 가졌고 오래된 장소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본래의 자리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오래된 장바구니 목록.
 다이닝 테이블과 매서운 겨울.

.

'어제도 여기에 있던 것만 같아'라는 말이 옳았다. 희미한 새로움 한줄기가 섞인 익숙함의 덩어리였다. 그 뿌우연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 무엇이 나올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 초반의 물방울들은 촉촉하다. 왜인지 모를 상쾌하고 청신한 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한 가지 느꼈다. 모든 지나가는 일에 그다지 아쉬워하거나 애틋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삶이란 다시 한번 흐르는 강물처럼. 언제 다시 그 그리운 얼굴들과 장소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오래된 동료이자 친구이자 현 하우스메이트이자 가끔 매거진에 등장했던 이는 어제 일찍 들어왔다. 딱 저녁 시간에 맞춘 즈음이었다. 나는 그를 이년 반 동안 알고 지냈고 지난 일 년 반 동안은 마주하지 못했다. 그가 자전거를 끌고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문득 나는 무언가 더 유난스러워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별스럽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마치 내가 떠났던 일이 없었던 것만 같이 오늘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익숙한 카페에서 맛있는 걸 가져왔다고 말했고 나는 '이미 이른 저녁을 먹었지만 음, 또 먹을 순 있지'라고 답했다.


그랬다.

여행은 계속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

사랑스런 매거진 덕분에 나는 어제의 여행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그 모든 나의 여행들을 안아 덮고 누워 위로받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조만간 '오늘의 여행'에 대한 매거진을 발행할 것 같다.


.

끝으로 오늘의 나는 겨울에 있다. 이곳은 또다시 산타할아버지가 반바지를 입는 남반구이다.

Hello again, Melbourne.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그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