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 토요일에 있었던 제15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 GV를 즐겁게 마쳤다. 총 9분의 감독님과 영화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과거의 퀴어영화는 '정체성 갈등'을 주로 다뤘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불특정 타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피해자로서의 퀴어들이 대부분 주인공이었다는 것. 최근에는 정체성 갈등 이후 '퀴어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들이 늘었다.
개막작인 <필리언>도 그런 차원의 영화였다. 우선 부모가 아들이 퀴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울러 다소 이기적인, 심지어 기괴하고 뒤틀린 욕망을 지닌 퀴어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캐릭터가 다변화하고 풍성해졌다. 이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인 것 같다.
이 영화제에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격려'와 '응원'이다. 영화에 관해 말을 얹으며 살아가는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심이 있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단편영화라도 최소 몇백에서 몇천만 원의 예산이 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퀴어영화는 비주류 장르라 찍는 사람이 더 없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퀴어영화를 찍어주시는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
함께 스터디하는 정영권 교수님이 신간을 내셨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영화전문가이시다. 스터디할 때마다 해박한 영화 지식과 영화 섭취량에 늘 압도된다. 나는 영화보다는 글이 먼저인데, 교수님은 글보다 영화가 먼저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운명적으로 가져야 할 역량은 전문성과 지속성일 것이다. 교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계신다. 기자로 일하면서 전문성과 지속성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하는 얘기다.
3.
이상일 감독의 <국보>를 보았다. 일본에서는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다. 예술은 인간을 찰나적으로나마 삶에서 해방시켜 주는데, 정작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는 아이러니를 섬세하면서도 장대하게 그린 영화다. 가부키에 관한 사전 지식을 조금이라도 습득하고 가는 게 좋다. 러닝타임이 175분이다. 이번 주에 감독님과의 인터뷰가 잡혀 있는데 기대가 된다.
4.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카메라 구도와 프레이밍 등 형식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아주 쉽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그의 영화를 '시각적 유머'로 정의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것이라는 본질을 일깨우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