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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Jun 10. 2019

<4월 이야기>가 사랑을 말하는 방법

※ 이 글은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90)에도 실렸습니다.


※ 스포일러 있음.


대학 진학으로 인해 홋카이도에 있는 가족과 작별하고 도쿄행 열차에 몸을 실은 우즈키(마츠 다카코)는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기묘한 이웃집 여자의 행동에 당황하고, 동기의 속셈으로 취향에 맞지 않은 동아리에 가입하기도 한다. 도쿄의 아름다운 봄날과 스무 살의 시련이 생경하게 맞물리던 어느 날, 우즈키는 대학가 근처의 한 서점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만난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많지만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는 드물다. 이와이 슌지는 첫사랑이 시작되는 그 싱그러운 찰나의 정경을 서술이 아닌 채색의 방식으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감독의 작법에 따라, 관객은 자연스레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에 눈을 기울인다. 드넓은 초원의 바람,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빗속의 빨간 우산 안에 어여쁘게 들어앉은 우즈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첫사랑의 색감이다. 영화의 본령이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picture)의 향연이라는 점에서 <4월 이야기>는 극의 전개를 보다 시네마적인 문법으로 묘파해내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공감각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4월 이야기>에 특별한 서사가 없고, 단순히 이미지의 나열과 짜깁기만 있다고 느꼈다면 아마 영화를 제대로 관람한 관객일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다이내믹한 내레이션도, 스펙터클한 몽타주도 없다. 다만 이와이 슌지는 인물들의 발화를 최소화시키고 존재의 상태만을 쇼트라는 비히클에 실어 나른다. 그러니까 그 쇼트와 쇼트 사이엔 대상을 오로지 카메라로 감각하고자하는 감독의 침묵이, 영화적 순간들이 담겨있다. 무성의 흑백 영화들이 관객들의 눈에 쏟아 부었던 최초의 전율처럼 애초에 영화적 순간은 언어의 형태로는 산출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4월 이야기>는 빠르게 끝나버림으로써 기존 멜로드라마의 장르문법을 비틀어 버린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의 품격은 시작하자마자 끝난다는 데 있다. 사랑의 감정이 가장 눈부실 때는 그것이 초동할 때다. 사랑이 시작되고 상대에 적응하는 순간, 설렘의 감정은 사라진다. 이와이 슌지는 그 초동의 장면만을 예리하게 도려내 관객의 손에 쥐여 주고는 이미지의 움직임을 종결시킨다. 즉 감독은 뜨거운 사랑의 감정에 여백을 부여하고, 관객은 그 비어있는 공간에서 저마다의 연주를 통해 영화의 마지막 리듬을 완성시킨다.


특히 우즈키가 고대했던 첫사랑을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는 예의 그 설렘과 낯섦의 감정이 리드미컬하게 생동한다. 사랑의 기운이 충만한 가능태와 영원히 불멸로 남을 첫사랑의 파토스가 거기에, 정확히 말하면 우즈키의 몸짓과 발짓에 담겨있다. 뱉어낸 말보단 쌓아둔 말이 더 많았던 시간들.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 속에서 애써 무심하기. 그 감정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즈키의 표정은 지난날 우리 모두가 첫사랑에게 지어 보였던 그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사람과 사랑이다. 이와이 슌지는 어느 따스한 4월의 봄날에 사람과 사랑을 스크린에 쌓아 올렸다. 그 쌓아 올림의 절정에서, 빨간 우산 속의 우즈키가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빗방울은 사랑의 물결이 되어 영화 전체를 추동한다. 그 물결의 감촉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사랑이 움트기 시작할 때, 상대가 나에게 무심히 건넸던 한마디가 사실은 내 영혼을 움직였다는 것을. 그것은 오직 ‘시작’일 때만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 그 시작의 지점에서 엔딩 크레디트를 올려 버리는 감독의 연출은 괜한 심술이 아닌, 크나큰 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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