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예술의 단골 주제 중 하나는 바로 ‘고통’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고통을 자양분으로 합니다. 영화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말하자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마주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청춘의 고통과 실패 그리고 성장을 다룬 영화를 ‘청춘영화’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청춘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시기는 바로 1960년대입니다. 영화연구자 이길성은 「청춘영화·청춘문화·신성일의 시대」(『한국영화 100년 100경』)라는 글에서 “1964년에 개봉한 <맨발의 청춘>의 인기는 청춘영화의 위치를 공고하게 만들었다”며 “이미 이전부터 한국영화에도 젊은 세대를 그린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었지만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 현상으로서 ‘청춘영화’가 성립된 데는 스타 신성일의 역할이 컸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논의처럼 신성일의 등장은 청춘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성일은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로 당시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젊은 세대의 욕구 불만과 자기실현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표현한 그는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에서 길거리 깡패인 ‘서두수’역을 맡아 배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맨발의 청춘>은 폭력배 서두수와 부잣집 딸 ‘요안나’(엄앵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저자는 “계급 차이의 장벽 앞에서 죽음도 불사하며 순수한 사랑을 지키려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는 공전의 히트를 했고 신성일과 엄앵란 커플의 인기는 최고 정점에 올랐다. 이후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엄앵란은 배우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지만 신성일은 문희, 남정임, 윤정희를 상대역으로 맞이하며 196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군림했다”고 설명합니다.
청춘영화의 명맥은 1970년대 ‘하이틴영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60년대 청춘영화를 상징하는 배우가 신성일이었다면 임예진은 70년대 하이틴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였습니다. 그리고 문여송 감독이 연출하고 임예진과 이덕화가 출연한 <진짜 진짜 잊지마>(1976)는 하이틴영화의 대표작으로 늘 거론됩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청소년과 하이틴영화」(『한국영화 100년 100경』)라는 글에서 “임예진과 이덕화를 하나의 커플로 설정한 다음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각자의 판타지를 제공한 <진짜 진짜 잊지마>는 ‘진짜 진짜’ 제목을 지닌 (하지만 서사적으로 서로 연관이 없는) 3편의 영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이 붐에 편승해 석래명 감독은 이승현, 진유영, 강주희 세명의 트리오를 내세운 <고교 얄개>(1976)을 만들었고 작은 성공을 거둔 다음 <얄개행진곡>(1977)과 <여고 얄개>(1977)로 그 뒤를 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또한 이 붐에 뒤늦게 다시 편승한 김응천 감독은 <첫눈이 내릴 때>(1977)를 임예진과 이덕화 주연으로 만들었지만 ‘진짜 진짜’의 성공을 재현하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논의처럼 하이틴영화의 붐이 꺼지고 청춘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989년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90년대로 넘어가서는 이른바 하이틴 공포영화인 <여고괴담> 시리즈가 청춘영화의 맥을 잇게 됩니다.
2000년대에는 네 친구의 우정과 파멸을 그린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가 800만명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청춘영화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친구>는 흔히 조폭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청춘영화의 계보 안에서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흥행은 물론 언론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장동건이라는 걸출한 스타 배우를 배출했습니다. <친구>는 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 “친구 아이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의 불후의 명대사를 남기며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0년대 개봉작 중에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1)이 대표적인 청춘영화로 거론됩니다. 이 영화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갈등과 파국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제훈, 박정민 등의 배우들이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2020)을 통해 다시 한번 청춘의 불안과 방황을 암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담아냈습니다.
시대극이지만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는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인 송몽규를 통해 비극의 역사가 청춘의 꿈을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했습니다.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과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