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세계를 규정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는다면 아마 상실喪失일 것이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항상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진다. 더 이상 내 주변에 없는 사람의 빈자리를 슬퍼한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나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의 의지를 담담하게 피력한다. 그것이 바로 고레에다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된 액션이다. 그 액션은 대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해진다.
아트 시네마Art cinema에 가까운 고레에다의 영화는 대중적인 흥행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가 시중에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보수적인 가족의 의미에서 탈주해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가능성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레에다의 가족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하는 가족의 의미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있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그의 영화에 있는 것이다.
〈브로커〉 역시 새로운 가족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영화다. 상현(송강호 분)은 이혼 후 혼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 남성이고,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청년 동수(강동원 분)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픔을 갖고 있다. 소영(이지은 분)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미혼모다. ‘보편’과 ‘일반’이라는 단어로 속박된 가족, 그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동행을 통해 영화는 ‘진짜 가족’의 의미를 탐문한다.
기존 고레에다의 가족영화와 〈브로커〉가 차별화된 지점은 ‘가족’을 넘어 ‘생명’이라는 가치에 천착하는 데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에는 아기를 버린 엄마(소영)와 브로커(상현, 동수)가 만나서 유사가족을 형성해 나가는 내용으로 구상했다.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면서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이 영화가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명에 관한 주제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반복적인 대사를 통해 강조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대사는 〈브로커〉를 지탱하는 일종의 영화적 리듬이다.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을 포함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한 번씩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경험이 있다. 그런 그들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낼 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발화할 때, 스크린 너머로 밀려오는 감정의 파고는 크고, 높다.
칸에서 고레에다 감독을 직접 만나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대사의 의미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원래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였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여러 취재를 거치면서 보육시설 출신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 아이들이 하는 공통된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야 했었나?’, ‘태어나길 잘한 걸까?’ 등의 질문이었다”며 “이런 질문을 평생 안고 살아가고, 거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건 사회의 책임이자 어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범죄자들이다. 그들 역시 태어나서 한 번도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라며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설명했다. 인간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그래서인지 〈브로커〉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애큐메니컬상Prize of the Ecumenical Jury을 받았다. 애큐메니컬상은 인간의 존재를 깊이 성찰한 영화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인간의 존재를 성찰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人間은 한자 의미 그대로 ‘사람 사이’다. 사람을 인人라 하지 않고, 굳이 인간人間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라고 했던 공자의 말이다.
그 ‘사람 사이’를 형성하는 최소한의 집단이 바로 가족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의 정의라는 게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일본에는 혈연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가족에 대한 관념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가족의 모습은 훨씬 더 다양하다”며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들이 사회 속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그런 모습이 보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고레에다의 영화를 규정하는 상실은 차가운 단어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가 따뜻한 이유는 상실을 견디고 버틴 존재들을 연결하는 에너지가 있어서다. ‘인’을 ‘인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태도. 상실과 부재에도 얼마든지 안녕安寧할 수 있다는 감각. 존재한다는 것의 기쁨. 그것이 바로 고레에다의 영화가 가진 선한 영향력이다.
〈브로커〉를 통해 한국 배우 최초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의 극중 직업은 세탁소 사장이다. 그는 헌 옷을 고쳐준다. 원래 있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이는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맥이 닿아있다. 상대적으로 없는 것을 있게 하기는 어려워도 원래 있던 것을 새롭게 하기는 쉽다.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상현이 소영의 단추를 고쳐주자 소영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았던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생명은 그렇게 위로받고, 구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