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a솨 Oct 09. 2019

함께해서 좋은 삶

서울 남성역 벽돌집




 요즘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사는 것 같다.




 특히나 서울. 대도시인 데다가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곳에는 수많은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 못지않게 수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특히나 나처럼 서울에 본가가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놓이기 쉽다.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해야 한다거나, 공공 자전거를 대여하는 것. 출퇴근 시간에 함께 자동차를 쉐어 하는 것, 이불 빨래를 하기 위해 24시 셀프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 사무실을 분리해서 함께 쓰는 것.



 크고 작은 수많은 공유 형태가 존재 하지만, 내가 반 오십일 때.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에 맨 처음 서울로 올라와 경험하게 된 공유의 형태는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남성역 2번 출구 앞 다세대주택. 나는 이 곳에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 슬기 언니와 란이 그리고 가은이와 함께 공간을 공유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개별성과 공유 공간이 비교적 분명하게 보장되어 있는 '쉐어 하우스' 형태의 예쁜 집은 아니었다. 그때 다녔던 회사에서 나처럼 지방에 본가가 있는 직원들을 위해, '숙소' 개념으로 얻어줬던 집이었기 때문에 회사 사정에 맞는 집을 구해줬을 뿐. 남성역 다세대주택은 손바닥만큼 작은 화장실 1개, 이상하게 길고 좁아서 쓸데없이 크다고 생각했던 베란다, 지칭하는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있는 듯 마는 듯했던 부엌 겸 거실. 그리고 쌍둥이처럼 똑같은 크기의 방 2개로 구성된 아담한 집이었다. 사실 둘이서 살면 딱 좋을 집이었는데, 그곳에서 넷이서 살았다 보니 당연히 처음에는 어렵고 불편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생활했었던 기숙사 생활과는 또 달랐다. 우리는 성인이었고, 각자의 주장과 성향이 뚜렷했다.




 화장실 사용에는 특별히 강한 규칙이 필요했다. 혼자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 크기 때문도 있었지만, 우리 넷은 퇴근시간은 달라도 출근시간만큼은 똑같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순서와 씻는 시간을 분명하게 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본인이 씻는 시간을 놓치면 그다음 사람이 일어날 시간이 되기 전에 후다닥 씻거나 기다렸다 씻기로 약속했는데, 보통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0분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긴장감을 갖고 규칙에 임하다 보면, 생각보다 쉽다. 지금도 나는 샴푸, 린스, 세안, 양치질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부엌과 냉장고 사용에도 규칙을 정했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에는 다소 협소한 공간이긴 했지만, 나와 슬기 언니는 주말이나 연차 쓴 날에는 집에서 밥 해 먹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란이는 주로 사 먹는 타입, 가은이는 항상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밤마다 고구마나 계란 삶기 같은 간단한 조리를 하는 타입이었다. 각자의 타입도 다르고 입맛도 다 다르다 보니, 부엌 사용빈도와 냉장고 사용 용량에 있어서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엌을 사용하고 나면 바로바로 치우고, 냉장고는 자기가 기억할 수 있는 동일한 위치에 각자 보관하고 관리하기로 정했다. 함께 장을 봐서 냉장고 영역 구분 없이 지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얼마 못 먹었는데 벌써 사라졌다. 내가 먹고 싶은 건 하나도 못 샀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 자체를 아예 차단했다. 누구는 진짜 유치하다 치사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같이 살면서 싸우는 이유들 중 대부분은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는 옷을 벗어 놓을 때 흰옷 검정 옷 구별해서 바구니에 예쁘게 넣었으면 좋겠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바닥에 그냥 훌렁훌렁 벗어던지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빨래가 건조대에 치렁치렁하게 널려 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 냉장고 문을 이유 없이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사람, 음식물 쓰레기 얼리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우리는 다 다른 취향과 습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다툼의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두 번이면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한테 별로인 상대방의 행동을 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 계속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되면, 그 행동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게 된다. 그러면 다툼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럴 땐 현명하게 대화로 푸는 방법이 가장 베스트인 것 같다.



 아니면 서로의 다름과 취향, 습관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방법도 있는데, 우리 넷을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우리는 각자 다 다른 바디워시와 폼클렌징을 사용했는데 이건 각자 선호하는 향이나 느낌, 피부 타입 같은 것들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란이는 솜이라고 하는 애완 햄스터를 우리 숙소에 데려와 키웠었는데, 란이가 동생처럼 아끼며 좋아하는 대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솜이는 매일 밤마다 쳇바퀴를 돌리지 않았다. 정말 어쩌다 가끔 새벽 내내 쳇바퀴를 돌리면, 그때는 란이가 솜이 집을 배란다 쪽에 잠깐 내놓거나, 우리가 보는 앞에서 솜이를 심하게 꾸짖곤 했다. 우리도 솜이를 계속 보니 귀엽기도 하고 똑똑한 것 같아서 함께 잘 지낼 수 있었다. 란이가 햄스터를 데리고 왔던 것처럼,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나만의 책장을 늘 갖고 싶었었는데, 같은 방을 썼던 슬기 언니가 공간이 좁아져도 괜찮다고 이해해 줘서 파란색 2단 책꽂이를 내 머리맡에 둘  수 있었다. 그리고 슬기 언니도 나중에 내 양해와 이해를 구한 뒤, 언니의 발끝이 닿는 곳에 책상을 들여놓았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과제도 해야 했고, 회사 강의 자료를 만들 때도 노트북을 놓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언니와 내방은 란이와 가은이가 썼던 방 보다 점점 더 협소하고 작아졌지만, 서로의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분리된 개인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혼자서 생각 정리를 해야 한다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 고요하게 음악 듣는 시간 같은 것들이 필요했는데. 그런 것들을 정말 완벽하게 실현하기에는 조건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그런 것들을 아예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땐 집 근처 24시 카페에 가면 됐었고, 고요하게 음악을 듣고 싶을 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으면 됐었다. 내가 바랬던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분명 혼자 살 때만큼 자유롭지도 못 하고, 지켜야 할 것 들도 많고, 신경 써야 될 부분들도 좀 더 디테일 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성역 다세대주택을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도 나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받을 수 있음과 동시에 함께 지내는 생활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때가 정말로 함께해서 좋은 삶이었던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