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우리는 그래서 친해졌고 그래서 멀어졌지

영화 <해피엔드>

by 진수빈

영화 <해피엔드>는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지진이라는 자연현상 앞에서 개인의 문제, 사회적 문제 두 가지 이야기 줄기로 뻗어 나간다.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누구와 살 것인가', '어떤 신념으로 살 것인가' 어떤 사람과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살 것인가. 최근의 나라 상황이나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도 가깝게 닿은 질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릴 땐 별것 아닌 이유로 쉽게 친구가 되곤 했다.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며, 운동장에서 잡기 놀이를 하다가. 나중에 커서 무얼 할 건지보다는 내일 무얼 할 건지. 그나마 대학생이 될 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별 이유 없음이 유효했다. 쉽게 친해졌고 철없이 놀았으며 난폭하게 몰려다녔다. 사상과 신념보다는 그저 단편적인 즐거움. 그러나 사회로 나오며 무엇인가를 잃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얻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새롭게 맺어지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사람들과 나누는 말과 행동 덕분에 나를 재정의한다. 신념을 견고히 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그 과정에서 나누어지는 관계가 생긴다. 별 이유 없이 친했던 친구들은 그 이유 없음을 이유로 멀어지고, 또 새로운 이유로 가까워지기도 한다.

'유타'와 '코우'는 그러한 관계의 재정립을 선명하게 경험한다. 자아가 형성되는 사춘기, 지진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 학교에 도입된 AI 감시 시스템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어지는 작은 차별. 행동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함께 목소리를 내려는 코우에 비해, 유타는 제도에서 이탈해 그저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음악에만 몰두한다. 그냥 즐기고 살면 안 돼? 시시때때로 차별을 겪는 코우에겐 속 편한 소리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듣는 이야기, 겪어야 할 현실이 조금씩 달라지며, 단단한 지반 같던 두 사람 사이에는 경미한 흔들림이 발생하고, 흔들림은 곧 지진처럼 관계의 균열과 붕괴를 일으킨다.

영화를 보며 최근의 관심사인 '취향'과 '결'을 떠올렸다. '내 편'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것저것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 한 명쯤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찾던 사람들을 글을 쓰며 하나둘 만나고 있다. 비슷한 취향과 비슷한 성격, 비슷한 마음. 적당하고 편안한 톤으로 아주 적당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 멋모르고 친했던 친구들과 깨지고 뒤틀린 후 애타게 찾아 헤매던 관계들이었다. 오래, 단단하게 잇고 싶은 관계들이다. 지나간 인연은 애틋하지만, 애써 이어 붙여도 애쓰는 관계에는 반드시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그래서 나는 유타와 코우가 선 길이 마치 나의 길 같았다. 그 길에서 함께 서 있던 여러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최근 쓰고 있는 글의 주제와도 같은데, 서 있었고 가끔은 엇갈렸던, 이제는 멀어진 얼굴들.

한편으로는 지난 연말의 갑작스러운 12·3 비상계엄 선포사태부터 최근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거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그저 묵묵히 삶을 이어나가던. 나는 후자였다.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쪽.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고백하고 싶은 적당한 사실만 고백하는 쪽.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치엔 관심이 없어서. 그런 핑계로 시대정신이 담기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다 보니,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엔 그런 고민을 자주 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그게 결국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며 살 것인가. 쉽게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결말은 제목처럼 해피엔드이면서 새드엔드다. 길 밖에서 여전히 걷고 살아 숨 쉬는 코우와 유타. 아마 우리처럼 또 다른 세상에서 새롭게 깨지고 부딪히며 자아 형성과 관계의 재정립을 수차례 반복하겠지. 매번 해피엔딩일 수 없지만, 죽어라 새드엔딩만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때로는 성장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부서지고 무너져 내릴 것. 그리고 반드시 다시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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