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다짐 속에서 시작하는 새해. 그중 반복되는 목표가 ‘책 읽기’와 ‘글쓰기’다. 1월에 내가 선택한 책은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었다. 원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잘 읽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재밌었다. 특히 1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웠다. 이미 죽은 시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살인자, 개, 나무, 금화, 죽음 등 인물뿐 아니라 사물, 동물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다행히 나를 돕는 이가 있었으니,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이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 주인공 ‘카라’다. 이 살인사건은 단순한 원한이나 치정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터키의 오스만 제국 시절, 전통적인 화풍을 고수했던 헤라트 파의 세밀화가들과 새로운 유럽 화풍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의 갈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역사적 지식과 예술적 지식을 펼쳐 보인다.
흡사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림은 사람이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이 보는 것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헤라트 파의 세밀화가들. 그들에게 새로운 유럽 화풍의 원근법(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리는 미술 기법), 초상화 등은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신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지시한 것은 그들의 왕, 술탄이었다.
그 두려움이 금박 세공사 ‘엘레강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단서라곤 엘레강스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말 그림뿐이었다. 콧구멍의 모양이 다소 독특했던 그 말을 그린 세밀화가를 찾아야 했다. 문제는 헤라트 파의 전통적인 화풍은 개인의 스타일을 드러내지 않았고, 서명을 하지 않았기에 누가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란 쉽지 않았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질 때쯤, 오랜 시간 세밀화가들을 가르쳤던 화원장 ‘오스만’이 나타났다. 오스만은 세밀화가들의 개인적 특징과 습관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누가 말 그림을 그렸는지 단번에 알아냈고, 누가 범인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유럽 화풍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가장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전통과 새로움, 신과 왕, 죽은 제자와 남은 제자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오스만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는 절정을 내달렸다.
이 책은 전통을 고수하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한다.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역사와 삶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만 거둬내도 위험과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에서도, 우리의 삶에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