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직장 선배로부터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차용함.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콘텐츠 기획 일을 하는, 9년 차 직장인 ‘오드리’ 님을 만나봤어요.
와, 9년 차라뇨. 아직 주니어인 제 눈에는 그저 대선배님처럼 느껴져요. 그래도 직장인이라면 여러 일을 겪은 경험이 있을텐데요, 후배로서 오드리 님의 직장생활을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주로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로 제 일상과 감정이 흔들릴 때, 힘들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로부터 내 삶을 분리시키는 요령을 잘 몰랐거든요. 함께 일하는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일터에 만연한 불안감과 내 삶 사이에 선을 긋고 중심을 지키는 법을 깨달아가면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사람이나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어려움보다는, 요즘은 ‘내 삶을 무엇으로 가꾸며 채워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듣고 보니 공감이 됐어요. 아무리 연차가 오래되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사람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거든요. 그래도 잘 이겨냈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어요. 그렇다면, 과연 오드리 님이 지난 20대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 되는 것이나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는 후회하는 편이 아니에요. 보통 제 관심은 미래이고, 과거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때 이거 왜 안 했지’ 생각보다는 ‘앞으로 뭐 하지’를 더 생각해요. 그래서 돌이켜봤을 때 뭐가 가장 중요했는지에 대한 답변은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과거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깊었어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온다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가끔은 간과할 때가 있어요.
그나저나, 독자 여러분께서는 직장과 일상 혹은 업무와 업무 밖의 경계가 잘 지켜지고 있나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주변 동료들이 은근히 온·오프(On&Off)가 잘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오드리 님은 온·오프가 잘 되지 않으면 업무가 끝난 뒤에도 회사에서 받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스트레스가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로 인해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하거나 나 자신에게 풀면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고 해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기 쉽지 않아요. 혼자서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보니, ‘나는 지금 온·오프 분리를 필요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채지 못하는거죠.”
또, 소중한 걸 잃었을 때가 직장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해요. 건강이나 사람을 잃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거죠.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이 자각되면 그때부터는 온·오프가 쉬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 온·오프가 잘 안된다는 건, 내가 일터 밖에서 꼭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좋지 않은 피드백으로, 퇴근길에 기분이 상해 있을 순 있어요. 그렇지만 건강하게 해소하는 법을 찾지 않아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소중한 시간을 놓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건 나 자신을 챙기는 거라고 해요. 오드리 님도 처음에는 그 점이 쉽지 않아,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신앙의 힘을 빌리거나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통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습니다.
여러분은 ‘워커홀릭’인가요? 저는 워커홀릭까진 아니지만, 일 벌이는 걸 참 좋아해요. 생각해 둔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즐거움과, 해냈을 때의 성취감에서 나오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죠. 지금 진행 중인 ‘스물아홉 프로젝트’도,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시키지도 않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즐겁게 일하다가도, 가끔 컨트롤 영역 밖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대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은근하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직장에서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경쟁이 불가피해요. 그 과정에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과열되어 있거나 무리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하죠. 오드리 님도 이 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성과에만 지나치게 매몰된다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성과 외에도 중요한 가치, 가령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신의, 배려 같은 것들을 잊어버리기 쉽다고 합니다.
“내가 빛나고 싶어서, 혹은 인정받고 싶어서 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하대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타인에게 공격성이 커질 때가 있어요. 그런 현상은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은 겪어봤을 거예요.”
오드리 님도 처음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땐 대처하는 법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타인의 스트레스로부터 나의 감정을 분리하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차분하게 상대의 상황을 조망하게 되었어요. 부정적인 감정 그 자체보단 그런 스트레스가 전파되는 상황 전체를 바라보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덜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을 의식한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최선을 다할까?’로 마음 에너지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불안정한 경쟁 환경 속에서 인정 욕구를 채우려 일하다 보면, 잘하고 싶은 선의의 마음이 되려 주변과 나를 몰아세우는 매서움으로 바뀌기 쉬워요.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의 스타일, 말투, 하대하는 상사, 불안이 감도는 팀의 분위기 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은 각양각색이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기 신뢰를 쌓다 보면, 어느새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단단히 서게 될 거예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믿음,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우리는 남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민감한 사람이 던지는 돌에 굳이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 오드리 님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심으로 판단하는 순간부터, 시간이나 관계적인 강박에서 벗어나져서 인생의 스케치를 그릴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업무와 일상의 균형은 물론이고,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고요.
콘텐츠를 기획한다고 하니, 오드리 님의 영감 출처가 궁금해졌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각종 SNS 계정이나 사이트가 따로 있는지 궁금했죠. 이때 오드리 님은 또 하나의 좋은 인사이트를 던져줍니다.
“요즘은 영감을 주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계속해서 쏟아지는 정보들이 아닌, 딱 하나를 찍고 깊게 파는 게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이 영화 한 편을 찍을 때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깊게 파보는 것처럼요.
콘텐츠마다 단편적인 자극들은 수없이 많지만, 저는 이 자극들을 어떻게 엮어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엮는 힘을 보기 위해서는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들의 콘텐츠나 스토리 하나를 ‘디깅’ 해보는 거죠. 최혜진 작가님의 <에디토리얼 씽킹>에서도 나오는 말처럼, 그런 여러 소재를 이용하고 편집하는 힘이 중요하지, 레퍼런스를 많이 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니까요.”
참고로 저도 오드리 님이 한 달 전쯤 알려주셔서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어봤는데요, 직무와 무관하게 구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해 주고 싶을 만큼 여러 방면에서 사고 확장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오드리 님께 20대 후반의 직장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남겼습니다.
“열심히 사랑하세요! 이 말이 모든 것들을 담은 말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아요.”
다섯 번째 주인공은 일상과 일 사이에서 단단한 균형을 이뤄낸 「오드리」 님 이었습니다.
스물 아홉들에게 울림이 되었길 바라며, 다음 인터뷰 주인공도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