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수현

얼마 전, 가수 한로로 씨의 <사랑하게 될 거야> 곡이 알고리즘에 떴다. 처음에는 '음색이 예쁘구나'에서 그쳤다가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구간이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수능을 준비하면서 봤던 국어나 영어 지문 외에는 구어체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많이 쓰는 나 조차도, 직접 입으로 꺼내 쓰기엔 너무 장황하고 어색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만 곱씹게 되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무언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동기는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남들이 생각했을 때 뜨악스러운 결심을 하거나 세상의 이치에 거스르는 결정을 할 때 누구나 알고 모두가 예상하는 리스크와 단점들이 나열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 결정에 자신감을 갖고 지속할 수 있는 건 험난한 고생길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될 것들이 더 값지고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예전의 나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내가 정한 어떠한 선을 벗어나면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 친구, 연인들은 모두 그 선의 예외였고, 그 사람들이 바로 사랑의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나와의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은 단점 99개에 오직 장점 1개만 있을 수도 있다. 그 수많은 단점이 누군가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 희박한 장점이 결핍을 채워주고 도움이 된다면 단점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밌다. 남들에게는 못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습마저 포용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너그러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후, 우연한 계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을 뒷받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라디오처럼 즐겨 듣는 채널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라플 위클리]였다. 영상의 주제는 <습관>이었는데, 평론가 이동진 님의 평소 언어 습관과 인생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 늘 좋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늘 안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을 단순하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없듯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어떤 문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그 와중에 자꾸만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보려는 마음이 가끔은 시야를 더 넓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상황이나 사람에게 푹 빠지기도 한다. 이것이 나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뜻밖의 여정이 될 수 있고, 다신 겪고 싶지 않을 불구덩이 같은 경험일 순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치가 쌓인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에도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할 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공감이 되는 포인트가 많기 때문이다. 살면서 대부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하지만, 꼭 한 번쯤은 논리적인 생각만큼 마음이 따르지 못해서, 그래서 결과가 뻔히 예상되면서도 끝내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킨 대로 행동한다. 그래서 사랑도, '이러해서 좋아해'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해'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남들에게 보기 좋은 면모뿐만 아니라 부족한 점들 마저도 수용하게 만드는 마음은 이미 계산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전 뇌과학 관련 책을 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효과에 대한 종지부를 찍을 내용을 발견했다. 단지 말뿐만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가 따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긍정적인 생각과 말이 편도체의 체적(Volume)을 줄이고 이것이 뇌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들어본 '편도체(amygdala)'는 두려움·위험 감지, 위협 반응, 정서 기억 등 부정적 감정 처리와 생존 반응에 중요한 뇌 부위이다. 그런데 그 편도체 부위가 클수록, 정서 건강에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편도체 체적이 작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이다.


① 편도체 체적 작을수록 = 과도한 공포·불안 반응의 억제 가능성 높다

일부 연구에서 큰 편도체 체적이 만성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위험과 관련된다는 결과가 있다.

편도체가 크고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위협·부정 자극에 과민해져 불안·공포가 쉽게 촉발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작은 편도체는 이런 과도한 반응이 덜할 수 있어,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일 가능성이 있다.


② 적절한 편도체 체적 = 전전두피질과 좋은 균형

건강한 정서 조절은 편도체(감정)와 전전두피질(이성·조절)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이 내용은 앞서 발행한 글 '신은 공평하다'에서 언급한 바 있다.

전전두피질의 억제 능력이 잘 발달하고, 편도체가 과도하게 비대하지 않다면 위험·두려움 자극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기 수월하다.


③ 편도체 체적 클수록 = 만성 스트레스·염증의 영향 가능성 높음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과 만성 염증은 편도체 성장 및 비대를 촉진한다는 연구가 있다.

즉 편도체 체적이 크다는 것은 만성 스트레스 노출의 흔적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평소 '그렇지만'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편도체의 체적도 감소시키며 건강한 뇌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래 가삿말로 시작해서 뇌과학으로 마무리 짓게 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나의 이야기다. 어쩌다 이 단어에 꽂히게 된 줄은 모르겠으나 이렇게까지 깊이 통찰할 정도면 나에게 그럴만한 이유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올해의 나를 관통하는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끝으로, 이 글을 읽어준 구독자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로로 씨의 <사랑하게 될 거야> 영상을 첨부한다. 가사와 노래를 감상하며 나만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무엇인지 떠올려 보길 바란다.


https://youtu.be/f1sr0D13wEY?si=T9acRnrbt7JnZt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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