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abica Duck Jul 15. 2022

카이로 너도 내가 지겹냐, 나는 너가 지겨워지는데,

한 달을 카이로에서 보내며에 대해

안녕하세요, 정신을 차린 아라비카 덕입니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나버렸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잠시 멈춤이란 명목으로 아무것도 안 함을 느껴버렸답니다. 뭐랄까 많은 일은 있었지만 진전보다는 그냥 같은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던 느낌,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지만 그래도 전 앞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랄까요. 그래서 정신 차리고 제 일을 다시 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주세욥


 @arabicaduck 계정에는 여행일지를 적는 편이니 관심있으시면 또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황토색은 사막의 모래만의 색은 아니기에 황토색 건물마저도 사막의 모래가 굳어 만들어진 듯하다. 짓다 만 건물들은 더 위로 솟고 싶은 마음에 철골이 먼저 튀어나와 위로 올라가길 기다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오를 생각은 그쳤고 철골의 끝만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국은 회색도시라는데 카이로는 황색 도시다. 몽골에서 보이던 각양각색의 건물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보이던 수많은 공원들을 뒤로한 채 이곳은 그저 사막, 모든 것이 없고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나일강의 강물을 빗어 만든 카이로다. 

 카이로가 사막은 아니다. 단지 사막이 이미 그 옆에 있을 뿐이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짐에 따라 이곳이 점차 사막화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피라미드만 가도 사막이 가까이 있음은 알 수 있다.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뉴카이로의 cfc에 가도 그 주변에서 오는 황량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더위 속에 있다 보면 내가 서 있는 곳이 황량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채워줄 음료, 바람, 그늘만 바란다. 나무 아래 쉬는 것은 경험해본 적 없건만 목을 적시거나 그늘에서 바람을 맞이하며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내 안에만 집중되어있던 신경들이 몸을 뒤집어 밖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제야 내 주변의 소음과 분주함 그리고 땀을 느낀다. 

 나의 기운은 어디쯤에 있을까. 더위에 있다 보면 가끔은 몸이 녹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하는데 그날 샤워를 할 때면 전날보다 더 타버린 목을 볼 수 있다. 처음 내 목이 탔을 때는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목마 저도 별 수 없지라며 받아들이게 된 내 기운은 이 대륙의 열기에 사그라든 것일까. 외국인이 아랍어도 못하다 보니 가끔은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경우도 있다. 잔돈을 덜 준다던가. 처음 이집트에 도착한 날부터 한 달이 넘어간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며, 처음 잔돈을 덜 줬을 때 왜 안주냐고 따졌던 내가 이제는 한 두 파운드니까 하며 넘어가는 것을 보면 내 기운이 열기에 사그라든 것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일관성에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해는 말길 바란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좀 더 자세히는 동양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자신들의 적극성을 가리지 않을 뿐, 착한 사람들이다. 다만 내 기운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사그라들었다.

 카이로는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서울을 여행한다고 서울 이곳저곳을 가지 않는 것처럼 카이로를 여행한다고 카이로의 이곳저곳을 다니지는 않는다. 다만 한 곳에서 한 곳을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장려하지 않는다. 현지인 마저도. 더군다나 저렴한 물가 덕분에 굳이 교통편을 안탈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 역시 무더위가 작열할 때는 내가 왜 걷기로 했을까 스스로를 원망하며 나오는 땀들에 미안함을 전하곤 하지만 나의 여행은 걷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내 신념 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걷는 것이다. 약속이 있거나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교통수단을 타고 다니지만 최소한 작업을 할 때는 걷고 또 걷는 게 내 신념이자 내 여행의 이유인 것이다. 걸으면 건강해진다와 같은 말이나 살이 빠진 다와 같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말은 안 한다. 늘 걸어 다녀도 밤 사이 에어컨으로 인해 몸살에 걸리기도 하고, 매일 10킬로가량 걸어 다녀도 살은 빠질 기미가 없다. 그러나 걸어 다니면 확실한 것이 있으니 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라 하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시간 또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걷는 것만큼 새로움을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누군가 어느 도시를 여행한다면 그나 그녀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봤는지를 묻지 않고 많이 걸었는지 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많이 걸었다면 분명 많은 것을 봤기 때문에.

 물론 나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지날수록 숙소 근처는 많이 다니고, 더위가 한창일 때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여자 친구와만 보내며 그 외의 시간들은 허물 같은 시간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 집은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로 더위에 걸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매번 지하철과 버스를 타야 한다. 재밌다. 이곳 지하철은 시설의 낙후보다 지하철 자체가 노후된 지하철이라 탈 때마다 사람은 많고, 바람은 불지 않아 타기 전까지 서늘했던 공기가 지하철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열기에 빨려 들어간다. 타야 하는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그 열기 속으로 뛰어들고 팔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매번 지하철이 다음 역으로 도착해 문이 열릴 때마다 잠깐 느낄 수 있는 그 서늘함에 기대, 마치 약에 취해 나불대듯 '이 맛에 지하철 타지'를 속으로 외치는 나 자신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버스들의 정신없는 손님 쟁탈전이 펼쳐진다. 개인버스다 보니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하기 때문에 빠르게 손님을 채우려고 애쓰는 모양새다. 아, 굉장히 북적한 느낌이 싫어도 이 북적함을 견디지 못하면 카이로를 여행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참는다. 내가 가는 곳이 어느 지역인지 알고 있다면 아랍어를 하지 못해도 지역 명과 수신호를 통해 운전기사와 탈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쫙 핀 손을 흔들면 그건 칼룹이란 지역을 의미하는 수신호고, 아치형을 만들면 므잘랏이란 지역을 의미하는 수신호다. 아랍어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공공버스에 적힌 글씨들은 의미가 없고 똑같이 수신호를 하는데 버스기사가 수신호를 보든 안보든 호객을 위해 잠깐 천천히 달리기 때문에 그때 말로 내가 가는 지역을 확인하고 타면 된다. 

 여행에 대한 나의 자세는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 기회라는 기약 없는 약속이었고 실제로 파리를 두 번째 갔을 때 노트르담 성당을 가보는 등 일전의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여행을 더 하게 되며 장소는 그대로 있어도 내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며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또 느끼게 되었다. 호스텔에 있다 보면 가까이하지 않아도 오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영어나 한국어를 하는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면 필수코스처럼 이곳저곳을 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이따금 내가 대화를 끼게 되면 이곳이 좋다던가 여기는 가보라는 등의 추천을 받게 되고 그럼 나도 한 번 그래 볼까 하며 잠깐 팔랑거리는 귀를 따라 몸이 팔랑거려 지도를 힐끗 보게 된다. 동시에 획일화된 여행, 나의 의지나 나의 의문 나의 관심 나의 것이 배제된 체 이루어진 여행이 나에게 필요한지 혹은 좋은지 의문을 갖는다. 물론 꼭 나의 것들이 없다고 나쁜 것만도 아니다. 타인의 권유로 해본 것이 되려 나에게 잘 맞아 좋게 기억될 수도 있는 법이니. 타인은 나를 넓혀주는 이들이므로 그들을 의심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여행은 종국에는 나를 위함이니까 나로서는 어느 것이 내 편에 맞는지 더더욱 혼란스러울 뿐인 것이다. 사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경험을 위해 한 걸음 딛어야 알 수 있는 법이라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때에 따라 바뀌는 나의 마음만이 중요할 뿐이고 여행을 하는 나이기에 그에 합당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이곳에 한 달을 머물렀고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있을 예정이다. 이는 한 편으로는 제대로 진행이 안된 작업을 위해서이며 한 편으로는 쉬지 않고 작업만 생각해온 내게 주어진 작은 휴식이기도 하면서, 얼마나 했다고;;, 한 편으로는 여자 친구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다만 사람이 한 곳에만 있으면 고인다고 벌써부터 이곳에서 말라 붙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가지 않으며 안에서도 무엇도 하려 하지 않는 나. 돈을 쓰기만 하고 만들 생각은 없는 그런 나를 보며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하다 멈추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님을 느낀다. 초심이 흐릿해지는 것이 여행을 시작한 지 오래돼서라기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생기는 영향이 더 큼을 느낀다. 여자 친구도 좋고 휴식도 좋지만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생각하고 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몰아붙임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한 달 이곳에 머물며 제대로 된 작업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떠날 채비를 할 심산이다. 이집트의 열기를 피하고 사막의 황색을 벗어나 좀 더 짙고 푸르른 구름이 있는 또 별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집트에서 날아온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