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진 가을밤 캠핑장 한 구석에서 아이가 도토리를 줍겠다고 난리다. 주웠다 놨다를 여러 번. 반드시 예쁜 도토리이어야만 한단다. 예쁜 도토리를 찾기 위해 휴대폰 후레시까지 동원해 요리조리 찾는다.
도통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잡히질 않아 애태우는 아이의 마음이 지금 이런 것이었을까? 글쟁이 흉내를 어설프게라도 내고픈 몸뚱아리가 일명 도토리 줍기에 두 눈이 시뻘게진다.
"엄마 나 안 찍어줘?"아이가 뾰루뚱해진 얼굴로 빤히 올려다본다. 아이들 사진으로 그득했던 휴대폰 사진첩은 어느새 풍경 사진들로 한 장 한 장 채워지고 있다. 언제 어떤 글에 쓰일 줄 모르니 일단은 찍어두자.
지인과의 통화 중에도 작은 수첩 안에서 펜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예능을 보다가도 "어, 저 말 건져야 하는데." 후다닥 휴대폰을 찾아들어 메모해 둔다.
도토리를 어디에 모을까요
생각하고 경험하고 읽고 본 모든 것이 글감이에요. 그래서 저는 수시로 모아요. 산책하다가, 설거지하다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우체국에 들러 보험 광고 전단지를 흘깃 보다가도 주워 담습니다. 글감은 도처에 널려 있고, 무료인 건 확실하지만 모아두어야 내 것입니다.
- 이은경의 오후의 글쓰기 중에서 -
"이번 브런치작가 도전으로 여러분은 이제 쓰는 사람이 된 겁니다."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 초등학교 입학식의 새내기 아이같이 마음속이 일렁인다.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 멘토인 이은경 선생님이 말한 대로 쓰는 사람이 된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단어와 문장, 글감과 사진까지 예전이라면 스쳐 지나갈 것들이 지금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하나둘씩 내 토도리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깜깜한 밤하늘 아래서 도토리 찾기보다 더 암담하기만 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도토리들을 어떻게 엮어 내느냐의 고민이다. 산 너머 산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꿸 능력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만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300타 속도로 초고를 완성한다던 이은경 선생님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불안한 마음이 재촉하는 통에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다시금 마음을 잡아보자.
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는 글에 이제 더 이상 욕심내기 않기로 했다. 내 한계를 인정하고, 아장아장 귀여운 나만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 보자. 멈추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