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타워와 스크래치 보드
오늘은 너무 기분 좋은 날이다. 엄마와 아빠가 새로운 캣타워와 스크래치 보드를 사 왔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스크래치 보드가 많이 닳아서 거실 소파와 형아 방 침대 모서리를 식구들 몰래 긁곤 했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눈치를 챈 것 같다. 사실 엄마가 모르는 집안 구석구석 여기저기 긁어둔 곳들이 좀 있다.
스크래치 보드 밑동은 아직 살아있었으나 실타래가 많이 풀려있어서 요새 내 발톱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내 발톱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긁어줘야 헌 발톱이 떨어지고 새 발톱이 반들반들 날까로와지기 때문이다. 발톱이 날카롭게 잘 다듬어져야 내가 높은 곳도 미끄러지지 않고 자유롭게 올라 다닐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도 아직 멀었는데 구두쇠 아빠가 이렇게 빨리 새로운 것으로 바꿔주리라고는 일도 기대하지 않았다. 허 참! 자고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새로 산 캣타워를 어디에 놓을까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새로운 캣타워에 익숙해질 때까지 지금 쓰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두자고 제안했다. 나는 속으로 "역시! 울 엄마답다"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항상 나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 뭐든 갑자기 바뀌는 것은 싫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할 때는 천천히 안단테(andante) 모드여야 한다. 환경이든 음식이든 갑자기 바뀌면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는 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캣타워가 온전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나의 채취가 묻어있는 것을 그냥 바로 버리기는 싫다.
아빠는 웬일로 쓰고 있던 캣타워도 같이 두자는 엄마 제안에 바로 동의했다. 캣타워를 새로 사 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엄마가 말하는 것에 항상 반대만 하던 아빠가 오늘은 웬일인지 엄마 말에 순순히 따라주기까지 한다. 아빠도 나이를 먹으니 변해가는 것인가? 나이 앞에 장사 없다더니...
엄마가 피시식 웃으며 말했다.
거봐 우리 오늘 돈 번 거야! 이거 원래 가격이 100불이 넘는 거라구. 반 값이 뭐야 반 값이... 어떻게 거의 다 팔리고 남은 것도 별로 없는데 이거 한 개가 딱 남았냐구... 역시 우리 콜튼은 복뎅이야!
그럼 펫세테(Petcetera)라 그 가게 이제 완전히 문 닫는 거야?
그니까 그런데 어떻게 오늘 마지막 날 우리가 이걸 건졌나 몰라. 으구 우리 콜튼 복딩이!!!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들어보니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펫세테라라는 가게가 내일이면 문을 완전히 닫게 되나 보다. 엄마는 그곳에서 내 목욕 샴푸나 장난감들을 사 오곤 했는데 이젠 이사를 가게 되나 보다. 그런데 오늘 엄마 아빠가 그 가게를 우연히 들러 하나 남은 캣타워를 반값에 산 모양이다. 어쩐지 구두쇠 아빠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캣타워를 미리 사 온 것이 이상하다 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새로운 캣타워를 사주고 싶은 마음에 세일 가격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겠지. 그리고 아빠에게 좋은 선택을 했다는 확인 사살을 일부러 여러 번 하는 거겠지.
우리 엄마는 늘 그런다. 누나와 형을 위해서 뭘 사 올 때도 아빠에겐 뭐 세일이 엄청났다나 뭐 그 가게가 문을 닫는다나... 우리 엄마는 세일하고 문 닫는 가게에서만 뭘 사나 보다. 우리 엄마 말대로라면 세상 모든 가게가 세일만 하고 문을 닫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아빠와 엄마가 같이 나갔다가 가게를 들러 사 왔으니 진짜 그 가게가 문을 닫긴 닫나 보다. 이제야 오늘 아빠가 내 캣타워를 사고도 엄마에게 말랑말랑한 이유를 알겠다. 진짜 좋은 가격에 캣타워를 샀으니 구두쇠 아빠가 돈을 썼는데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이번 캣타워는 좀 독특하게 생겼다. 가운데에 부드러운 쿠션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흰색이다. 나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데 이 캣타워는 완죤 내 취향이다.
내일부터는 거실에 있는 소파랑 형아 침대는 식구들이 없을 때에도 더 이상 긁지 않을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이미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엄마는 내게 잇몸 마사지를 해줄 때마다 "살아있는 생명이 중요하지 그까짓 소파며 침대가 뭔 대수라고. 소파야 망가지면 또 사면되지. 그치 콜튼? 걍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라고 말할 때마다 솔직히 찔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소파의 긁힌 자국을 아빠가 알면 나만 혼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엄마도 아빠의 대박 잔소리를 견뎌내야 한다. 원칙과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빠는 엄마가 내 버릇을 다 망친다고 늘 불평이다. 캣타워를 사준 아빠가 본전 생각 안 나게 내가 조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