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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Mar 08. 2022

누나와의 헤어짐

누나가 대학을 갔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엄마가 슬퍼 보인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가 요새 말수가 부쩍 준 것 같다. 


콜튼, 누나가 공부하러 멀리 간다네... 너도 슬프니? 


오늘은 나의 코를 비비는 엄마의 코가 다른 때와 달리 좀 열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전 별로 안 슬픈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꾸욱 참고 엄마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검은색에 가까운 엄마의 갈색 눈동자가 흔들림을 느꼈다. 늘 장난기로 반짝거리는 엄마 눈이 오늘은 빛나지 않고 흐렸다. 웃을 때마다 엄마의 큰 입 사이에서 빛나던 엄마의 하얀 치아가 오늘은 굳게 닫힌 엄마의 두 입술 사이 안에 꼭꼭 숨어버렸다. 미장원 갈 때가 되었는지 엄마 머리 꼭대기에 하얀색 머리들이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의 하얀색 머리와 슬픈 모습이 엉켜서 엄마가 얼추 나와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엄마와 텔레파시가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어떤 기분이고 뭘 원하는지 굳이 내가 '야옹'을 많이 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차린다. 나 또한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엄마 기분이 어떤지 엄마 냄새와 숨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엄마는 남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내가 엄마의 마음까지도 읽는 신통함이 있다고 요란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처럼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람은 굳이 신통함까지 빌리지 않더라도 엄마 마음을 읽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누나가 싼 가방들을 아빠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식구들에게 늦지 않게 서두르라고 재촉을 했다. 우리 아빠는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남 재촉하는 거에는 따를 자가 없다. 누가 어디를 간다 하면 정작 떠나는 사람보다 아빠가 더 요란하게 준비를 하고 재촉을 한다. 공항 배웅 가는 일을 마치 한 달간 여행 떠날 사람처럼 집단속을 하고 또 하고 뒤를 살피고 또 살피고. 나에게도 공항 갔다 올게 말을 몇 번이고 했다. 나는 아빠가 가족들과 외출할 때마다 며칠 집을 떠나는 줄 착각할 때가 많다. 어디 멀리 가나 하고 귀를 쭝긋하고 들어 보면 쇼핑 나간다든지, 골프 간다든지, 공항 간다든지 하는 일인데 나만 남겨두고 가족이 잠시 집을 비울 때마다 마치 먼 길을 나서듯이 집단속을 한다. 안전 또 안전 그리고 보안 또 보안이다. 하여간 대단한 양반이다. 


누나는 내 얼굴에 뽀뽀를 하며 누나 특유의 선심을 썼다.  


콜튼! 네가 원하면 내방 네가 가져도 돼! 알러뷰! 


나야 당근 누나 방을 내방으로 하고 싶쥐이... 누나 방은 형아 방에 비해서 더 크고 햇빛도 잘 들어온다. 그러나 그게 어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집의 모든 것은 주로 아빠가 결정하는데 저 까다로운 양반이 나더러 누나의 큰 방을 쓰라고 하겠냐고라. 사실 그 방은 오래전부터 형아도 쓰고 싶어 했으나 누나만 편애하는 아빠한테 그건 택도 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우리 엄마라면 어떤 일이든 설득이 쉬운데 아빠는 다르다. 아빠는 아주 복잡한 사람이다. 어쨌든 나한테 선심을 쓴 누나의 마음이 고맙다고 생각했다. 


대학 공부를 위해서 누나가 집을 떠나는 순간에 나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나는 악기 연주며 여러 시끄러운 소리를 많이 내는 누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시로 내 이름을 불러 주고 틈만 나면 "알러뷰!" 하며 들이대던 누나가 멀리 간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식구들이 문 밖으로 나갈 때 나도 문까지 배웅을 나갔다. '야옹. 누나 잘 갔다 와라~'라고 인사를 했다. 누나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한 마디를 던지고 떠났다. 


콜튼 바이! 알러뷰! 


그렇게 누나와 식구들은 공항으로 떠났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지난 수 년동안 아침저녁으로 보아왔던 누나를 이제 가까이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울컥한 마음에 착잡해졌다. 집에 들어오면 후다닥 소리를 내며 다니던 누나가 없는 이 집은 조용하고 평화로울까? 아니면 허전하고 쓸쓸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누나 방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깨끗하고 단정한 형아 방과는 달리 누나 방은 늘 온통 정신이 없다. 사방 벽에는 그림, 글씨들로 빼곡하고 짐을 싸느라 들춰진 옷가지들은 침대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책상 위에는 많은 책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누나가 공부며 운동으로 받아온 수북한 상들과 매달들이 책상 위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문득 곁에 있을 때 내가 누나를 더 챙겨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누나 사진들을 보니 누나가 집을 떠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여러 날이 지난 것만 같았다. 방학을 하면 누나를 또 보겠지 하고 위안을 삼아봤지만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다. 


갑자기 문쪽에서 복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구들이 돌아왔나 보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뭔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엄마 목소리가 좀 날카로웠다. 잘 들어보니 누나 방과 형아 방을 바꿔서 앞으로 형아가 누나 방을 쓰도록 허락하자는 엄마 의견에 아빠는 안된다고 못을 박는 것 같았다. 아빠는 엄마하고 옥신각신하다가 가만히 뒤에 서있는 형아한테 뭐라고 큰소리를 했다. 형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 방 쓸래요. 저 누나 방 싫어요...


형아의 말이 채 끝나자마자 아빠는 엄마한테 그것 봐라. 형아가 자기 방 쓴다고 하는데 왜 엄마가 난리냐고 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다. 누나 방은 누나가 방학 때 와도 그대로 있어야 하니 아무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아빠에겐 늘 누나밖에 없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엄마는 귀찮다는 듯이 "으구... 잘랐군..." 혼자 궁시렁거리다 쿵당쿵당 소리를 내며 지하 서재로 내려갔다. 결국 승자는 늘 그렇듯 아빠였다. 나는 형아가 짠한 마음이 들어 형아 방으로 갔다. 늘 내가 들락거리도록 문을 살짝 열어두는 형아인데 웬일인지 형아 문이 닫혀있었다. 살며시 긁어보았다. 그리고 작게 "야옹~"도 해보았다. 그러나 형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말은 누나 방 싫다고 했지만 형아 맘이 꽤 상했나 보다.


야옹~ 형아야, 아빠 원래 그렇잖여. 걍 그러려니 하고 맘 풀어라... 


엄마는 또 어떻게 하고 있나 내려가 보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한 계단을 내디딜 때마다 걱정과 염려가 늘어만 갔다. 이른 아침 엄마의 열기 있는 코 잔등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엄마 서재문을 살며시 앞 발로 밀어보았다. 


앗!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신정환의 코믹춤을 연습하고 있는 울 엄마! 

https://youtu.be/TTvUre0jC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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