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만의 첫 해외여행, 그 후.

17개월 아기와 해외여행, 우리 괜찮을까.

by 어쩌면오늘



우리, 괜찮을까.


미혼이던 시절의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던 아이였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19살의 경험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이 얘기는 언젠가 또 풀어보는 걸로.). 한 달짜리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기도,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금요일 퇴근 후에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국내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내가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었구나 깨닫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낳은 후였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여행을 좋아하던 영향으로 출산 후로도 아기와 함께 여행을 종종 다녔다. 물론, 국내여행만.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해외여행도 할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아기가 17개월이었던 시기다. 남편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했지만, 친동생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순탄할 것만 같지만, 동생들도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어쩐지 나는 아이 3명의 보호자가 되었다. 17개월 아기와 마찬가지로 첫 비행인 동생 2명. 그렇게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 욕심 아닌가요?


5471D09D-7E7E-4BAA-BD5D-55EA86BC088A.jpeg
0F8D1483-9286-4A23-AAAA-D93E29D772A5.jpeg



"어차피 기억도 못할 텐데, 엄마 욕심 아닌가요? 아기랑 다른 사람들만 피해받겠네요."

아기랑 함께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는 글에는 심심치 않게 이런 글을 볼 수 있다. 물론 아기는 이 시절에 함께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유년시절을 떠올릴 때에 어떠한 느낌이나 기분이 떠오르는 것은, 그 시절들의 분위기를 기억해서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아이가 언젠가 삶이 외로울 때에 가족이나 유년시절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끈을 만들어주고 싶다.




4월의 일본. 첫날은 추웠지만, 그 이후로는 또 날이 더워져서 두꺼운 옷을 많이 챙겨간 나는 고생을 좀 했다. 주로 유아차에 태워서 전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처음 보는 환경과 새로운 언어들 때문인지 아기는 소리를 지르거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그래진 눈으로 주변을 쳐다보기 바빴달까. 그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빨아들이려는 듯이 오롯이 집중을 했다. 여행이라는 건, 성인과 아기 모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행위인가 보다. 내가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의 모습이 아이를 통해 투영되는 듯했다. 나도 이렇게 반짝거리는 눈망울이었을까.


아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나에게도 너무나 신기했던 추억이 남은 곳은 수족관이다. 사실, 아이에게 돌고래 쇼를 보여주기 위한 마음으로 갔었는데, 아이가 교감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졌었다. 돌고래가 활동하는 수족관이 식당 옆에 있었기에 밥 먹으면서도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아이는 그냥 넓은 공간에 신나서 돌아다니는데, 그런 아이의 뒤쪽으로 돌고래가 다가왔다. 이내 돌고래와 아이는 서로 교감하며 장난치는 듯한 행동을 했고, 그 모습이 아직까지도 나는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여행. 단어만 봐도 여전히 날 설레게 하는 그놈의 여행.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 고되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일 테지. 힘들었다, 하지만 다시 또 가고 싶게 하는 추억들을 많이 쌓게 되었다.

수족관에서 동물들과 교감. 새로운 음식들을 먹어보며 미각의 스펙트럼 확장. 엄마, 아빠가 아닌 이모, 삼촌과의 소소한 추억거리. 새로운 문화와 언어.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다. 아이는 여행 이후로 장어덮밥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이모/삼촌과 영상통화도 자주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기라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많이 든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이 함께 여행 다녀주고 싶고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


또 하나. 여행을 다녀온 뒤로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발달 과정 중 가장 큰 요소인 언어 발달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단어는 빠른 편이었는데, 그 뒤로 내가 자극점을 찾지 못해서인지 유의미한 발화가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을 접한 이후로 갑자기 말이 빠르게 트이기 시작했다. 일본 이후로 베트남 여행을 한 번 더 갔었는데, 마찬가지로 발화가 더욱 빨라졌다. 발달의 빠름의 정도는 잘 모르겠지만, 본인의 의사를 얘기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어쩌면 발달 시기와 여행 시기가 우연히 겹친 걸 수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큰 사건이 아기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는 건 맞는 것 같다. 그 자극을 활용함에 있어서 아이의 성장과정을 조금을 빨리 이끌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울기도 웃기도 했던 우리의 첫 여행. 당연히 힘들었지만, 그 힘듦이 있었기에 더욱 빛나는 시절로 자리 잡을 수 있겠지. 네 세상을 만들어가며 그 중심으로 가는 여정 속에, 이때의 시간이 조금이나마 길이 되어 주길 바라, 아가.